<오링징이>와 <광주모팅이>

                                                                                                      이 진 원  


  어느 곳이나 그 지방의 지명이 정해진 이유에는 특별한 야사나 전설과 같은 깊은 유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선지 요즈음에는 역사바로세우기란 빌미로 지명을 순수한 우리말로 복원하는 지방이 상당이 많아지고 있다.


  내 고향 하동에는 예로부터 내려온 지명이 확실한 학술적 근거를 갖지 못한 채 구전되어 내려온 이름이 상당히 많은 고장이다. 어린 시절 이상한 지명들을 어른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중국의 야사를 인용한 그 지방의 지명이 그대로 구전되어 온 것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 바로 <오링징이>와 <강주모팅이>이다. 

 

  내가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때 까지 하동 읍내를 둥글게 휘감고 흘러가는 섬진강 나루터는 네 곳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강주모팅이>는 하동읍의 가장 윗자락으로 흥룡, 화심과 전라도 다압을 연결하는 나루터였고,
<오링징이>는 지금의 섬진교 바로 위쪽의 나루터로 유명한 삼국야사의 의미가 있는 곳이다.
<돔박곡>은 지금의 섬진강 철교가 가로놓인 곳으로 한민족 피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톰태기>는 광양 진월 오사리와 하동목도를 연결하는 섬진강 하구에 속하는 가장 폭이 넓은 강나루로 바람이 잦은 날은 수상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무서운 곳이기도 하다.


  <강주모팅이>에도 아름다운 작은 정자가 있었고 수양버들이 곱게 들러선 이곳은 중국남부의 아름다운 주강(朱江)강변의 나루터 모습과 같다고 여긴 한학자들이 이곳을 광주(廣州)로 착각하여 광주나루터로 부르면서 나그네들의 쉼터로 여겨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 나루의 구비를 돌아오면 광주의 주강 전경을 바라보는 듯 아름답다고하여 광주모퉁이라 한 것이 방언화 되어 "강주모팅이"로 굳어져 버린 것이라고 전해진다.


   보통 나루터는 그 지방의 유래를 가졌으나 내 고향 하동의 나루터지명은 거의가 중국의 야사속의 지방이름과 유사하다. 악양이 그렇고, 동정호가 그렇다. 내고향 하동이란 이름이 바로 중국의 지명으로, 삼국야사의 중국 향토신으로 섬기는 관운장이 태어난 고향과 같은 이름이다. 그래선지 내 고향 하동에서 걸출한 인재들이 구름처럼 태어나 보국안민을 위한 봉사를 하는 인재가 많은 것도 당연한 연유라 한다. 


   내가 어릴때 다정한 목소리로 늦둥이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처럼 말씀해주시던 아버지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도무지 알수가 없어 지겹기만 했었다. 항상 眞書(한문)를 공부 해야 물리가 터진다고 하시며, 새벽마다 나를 깨워 천자문을 읽게 하셨고, 내가 천자문을 다 읽을 때까지 아버지는 가부좌를 하시고 동학 주문을 외우셨던 기억이 또렸하다.

<오링징이>
오링정이있던바위


   내 나이가 고희를 이마에 붙인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깊고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그토록 어려웠던 이야기가 실오라기 풀리듯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 나는 신비함을 느낀다.

  아무리 진보한 최첨단의 정보화 신물결위에서 주저없이 항해를 할 수 있는 능력개발의 첩경도 온고지신이란 때묻은 경험이 바탕되고 더하여 개혁의지로 꾸준한 노력을 지속할 때 가능한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각 개인의 순수하고 작은 노력이 하나 둘 모일때 엄청난 나비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의미에서 작은 이야기 하나를 가벼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이 중에서도 상당히 유서가 깊고 중국야사의 전설이 간직된 중국의 유명한 곳의 이름을 인용하여 돌 바위위에 세워진 적벽 나루터의 정자가 바로 烏零亭(오링정)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선인들이 불렀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중국사기의<項羽自刎>에 나오는 대목에서 亭長이 烏 江에서 배를 대고 패장인 항우를 기다리고 있다가 오강을 건너 피신한 후 재기를 하라고 부탁하나, 오추마를 그에게 주고 자결을 하자, 오추마도 따라 죽었다는 삼국야사의 이야기를 인용한 그 정자가 바로 고향의<오링정>이라 한 것인데 이것이 방언화 되어 ‘오링징이’로 불리게 된 것이라고 하지만 분명하지 않다.

고 소 성

  또 한 가지는 중당시인 張 繼가 지은 楓橋夜泊이란 유명한 시를 연상한 나루터와 같은 정취를 가진곳으로 읍내 마을 뒷산의 고소성까지 이름이 같다고 하였다. 또 다른 이야기로 중당대 시인 한유와 맹교의 우정을 나눈 오강의 정자라고도 하고, 성당대시인 장열의 슬픈 우정을 기리는 의미로 인생의 무상함을 이야기한 오링정이 이곳과 같았을 것이라고 여겨 고향의 한학자들과  유랑을 즐기던 한림학사들이 하동을 방문하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찬양하며 이곳 정자를<오링정>이라 불렀던 것이 그대로 구전 되어왔을 것이라는 아름다운 이야기 꺼리일 뿐이다.

 

  물론 이름이나 지명을 편리하게 바꾸어 쓸 수도 있겠지만, 긴 세월을 지나온 동안 선인들이 우리게 들려준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지워가면서, 아무른 근거와 이유 없이, 고증을 검증 해 보려는 작은 노력도 없이, 도리어 부르기도 불편한 <오룡정>으로 바꾸어 부르고, 심지어 문학 작품 속에서도 뿌리도 없는<요룡지>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되는 것은 섬진강의 역사적 배경을 간직한 아름다운 운치를 고맙게 여기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학술적의미를 부여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지금의 우리 모두가 그 진의를 명확하게 모를 바에는 의문을 남겨 둔 채, 그대로 예전부터 구전되어 내려온 이름그대로 “오링징이”라고 쓰는 것이 신세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2005. 10. 3 개천절에 부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