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 카페에서


글 / 이 진 원


  오랜만에 해상노조가 3일간의 관제파업을 하는 바람에 한가한 여유를 얻었다. 좀처럼 휴식할 시간을 주지 않던 네덜란드인의 조용한 근면성이 존경스럽고도 가끔 미웠다.

  중서부 아프리카 몬로비아나 Siera에서 철광석을 싣고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을 정기운행한지가 2년이 다되어 간다. 겨울이면 일주일 마다 한파와 폭염의 계절을 바꾸어 살아야하는 우리의 바쁜 생활은 인간을 용광로 속에 넣었다 식혀내는 듯하다. 가끔 영상 속의 대영제국의 노예생활을 연상케 한다. 

  오히려 그 시절의 노예선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10만 톤의 거대한 벌크캐리어의 선하작업이 하루나 이틀이면 끝이나버리기 때문에, 기관 보수와 정비시간마저 태부족이라 편히 쉴 여유가 없었다.

  다행이 조건부 관제 스트라이크를 해 주는 덕분에, 조급한 마음으로 기관정비점검을 마쳐놓고 보니, 목줄이 풀린 강아지가 상자 속에서 눈 덮인 벌판에 나온 것처럼 해방감이 오히려 공허함을 느끼게 했다.  

  네덜란드의 큰 항구도시 이름에 dam이 붙은 것은 간척사업(댐)으로 생긴 육지라는 의미란다. 그러나 우리민족역사와 인연이 있는 헤이그는 내륙에 있어선지 그렇지 않다.

  마음이 들뜬 선원들이 외출 준비를 하고 유명한 암스테르담관광을 가자고 하니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도 덩달아 가슴이 설렌다.

  우리나라가 100억불 수출목표 달성을 했다고 자랑했을 때, 이곳은 건설 된지가 이미 200년이 가까운 무인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었다. 로테르담에서 암스테르담까지는 한두 시간의 기차여행이면 충분히 오가는 거리다.
  역 구내 자판기에서 산 한 장의 차표로 당일 자정까지는 베네룩스3국 어디를 갔다 올수 있다. 언젠가 이 차표 한 장으로 벨기에의 Antwerp에서 암스테르담을 다녀온 일도 있었다.


  조용한 지하광장에 팔방으로 설치된 상하 에스카레이타는 쥐죽은 듯 조용하게 멈춰 있다가 사람이 스텝에 올라서면 놀란 듯 미끄러져간다.

  그렇게 빠르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전철의 진동소리를 한 시간 정도 들으면 복잡한 암스테르담 지하역 광장에 도착한다. 우리는 어느 게이트로 나가야 할지 몰라, 옆을 스치는 사람들에게 벼룩시장을 물어 밖으로 나왔다.

  여름이라 사각반석으로 촘촘히 깔아 만들어진 길바닥이 태양에 달구어진 탓으로 건조한 열기가 바늘같이 따갑다. 강변 광장의 길가에 마련된 벼룩시장은 참으로 넓은 소품 전람회나 노천 박물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심지어 한국의 망건과 갓도 있었고 곰방대도 있었다. 물건을 팔러 온 것인지 자랑하러 온 것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조용하고 멋진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지만, 남의 귀를 거슬리게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방해 하지 않는 배려의 조화는 참으로 신기할 정도다. 한 노인은 구멍 뚫린 종이테이프풍금연주기 수레를 광장의 모서리에 멈추고 돌리면서, 통 깊은 검은 모자를 벗어 인사하며 동전을 구하는 모습은 암스테르담의 멋진 거리풍경그림 같다.

  길거리의 라이브 음악밴드들의 연주 모습은 이글거리는 태양을 조롱하듯 웃옷을 벗은 채 붉게 익은 그들의 피부를 자랑하고 있었다.

 

  수로를 따라 소리 없이 흘러가는 작은 유람선의 관광객들은 우리가 서있는 다리 밑으로 지나가며 손을 흔든다. 우리도 이 유람선을 타고 암스테르담을 한 바퀴 돌았다. 모두가 인공으로 만들어진 수로라고 한다. 댐을 건설 하면서 해면보다 낮은 토지의 물을 퍼내는 수로가 바로 암스테르담을 순항 할 수 있도록 설계하였고, 이 수로를 이용하여 대량의 물류유통을 하고 있는 경제적 이득은 엄청나다고 한다. 일거삼득의 지혜를 발휘한 것이다.

  더운 여름철에는 수로관광이 시원하고 더욱 아름다워 인기가 좋았다. 순항선에서 내리자 더위를 더 견딜 수 없고, 모두들 갈증이 심하게 일어났다. 어두운 조명 빛 선실에서 장기간 태양을 보지 못한 무력감 때문인 것 같다. 벼룩시장 주변의 자그마한 카페가 눈에 띄었다.

  시원한 맥주나 한잔할 셈으로 모두 그곳으로 들어갔다. 조용한 음악이 흐르고, 바텐더 한사람이 스탠드 앞에 마주앉아 병맥주를 그대로 들고 마시는 두 쌍의 손님에게 무엇인가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서자 힐끔 한번 처다 볼 뿐 설명을 계속하고 있었다.

  우리는 찬바람이 나오는 안쪽 자리를 잡고 몇 사람씩 탁자에 둘러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다 가실 때가 되어도 바텐더는 우리에게 무엇을 마실 것인가를 물어보지 않았다.

  성격이 명랑한 삼등기관사가 <어? 장사 안하나?> 하면서 일어나 바텐더 앞으로 가서 무어라 중얼거리더니, 좀 있다가 맥주를 한 박스(12병들이)를 통째로 들고 왔다.

 「셀프서비스 라 하네요!」하며 볼멘소리로 말한다.
「종일 기다릴 뻔 했군! 거 참」하고 나는 멋쩍게 말했다.

 「정보를 잘 알고 다녀야 하는데, 우리생각대로만 하고 다니니 원」하면서 일등항해사가 자책 하듯 말했다.

  다 목마른 처지라 배안에서처럼 서둘러 탁자에 둘러앉아 모두에게 무작정 한 병씩 안기고 계산이야 나중에 공동으로 하는 한국 사람의 두레본성이 이런 곳에서도 잘 나타났다.

  한 순배가 숨 가쁘게 돌아가고 갈증이 잡히자 피곤함이 엄습하는 지 다들 가슴을 펴 젖히며 의자에 등을 걸친다. 아직도 맥주 두세 병이 박스에 남아 있는데도 눈 돌리는 사람이 없다. 서로 더 권할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두가 파김치처럼 지쳐있었다. 에어컨 바람도 처음 같이 시원치가 않다. 맥주로 열이 오른 탓이다. 이마의 땀방울이 다시 송송 돋아나고 손수건을 되찾는다. 모두들 이곳은 온통 돌뿐이고 깊은 숲속이 없으니 지독하게 덥다고 불평이다. 그래도 암스테르담의 여름은 겨울보다는 더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순간, 가벼운 방울 소리를 울리며 카페의 출입문이 열리면서 한 노인이 밴조 같은 만돌린을 들고 들어섰다.

  노인은 고개를 한번 숙여 예를 표한 후 우리가 있는 탁자로 다가와 어깨에 걸치고 있던 만돌린을 내려 연주하기 시작한다. 연주라기보다는 만돌린으로 찢어진 양철 판 두들기는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악기선이 조율도 안 된 채 축 쳐진 줄을 빅크(연주용 삼각뿔)로 북북 긁어내리기만 하니 철철 그리는 소리밖에 더 나겠는가.

  그렇게 한참을 연주 한 뒤에 그는 정중하게 말했다.

 「신사님들, 목마른 나에게 저 맥주 한잔을 마시게 해 주실 수 없을까요?」

삼기사가 웃으며 <그것도 연주라고 수고 값을 달라고 하요>하며 맥주 한명을 따서 노인에게 주었다.  나는 고교시절의 연주 생각이 문득 떠올라 만돌린을 만져 볼 수 없겠느냐고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안 된다고 했다.

  내가 악기를 잘 만질 줄 아는 삼등기관사가, 그 노인에게 우리 일등기관사는 유명한 음악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렇다면 한번만 만져보라고 하면서 거만하게 악기를 넘기 주며 비웃는 듯이 나를 노려본다. <노리끼리한 후진국 한국 사람이 어려운 만돌린을 만질 줄이나 알겠는가!>하는 것 같았다.

  만돌린 선이 너무 늘어져서 도저히 연주 할 수가 없다. 내가 최저음이 제대로 소리가 날 정도로 조율을 하려고 4번 선을 울리며 당겨 올렸다. 노인은 마시던 술잔을 다급히 내려놓으며, 안 된다고 두 손을 흔들며 악기를 돌려 달라고 야단이다.

  노인은 선이 터질 것이 두려웠고, 겨우 소리만 날 정도로 최저 장력을 유지한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선이 터지면 변상을 해 주겠다고 안심시키며, 선 한 벌 값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5달러나 되는데 일주일을 벌어도 선 한 벌을 구할 수 없다고 하며 화를 내며 막무가내 악기를 돌려 달라는 것이다.

  마치 무식한 놈이 무엇을 안다고 자기를 이렇게 괴롭히고 있느냐 하는 듯 원망하는 눈치가 너무나 역력했다. 그동안에 하나 둘 들어 선 다른 손님들도 나를 이상한 사람인양 여기는 것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5불짜리 지폐를 노인에게 내밀며 선 값을 미리 드릴 테니 연주 한번 해보자고 부탁 하였더니, 그때서야 돈을 받고 못이기는 척 거만하게 허락 해주었다.

  조율하는 시간이 상당하게 걸렸다. 사람들이 둥 댕 둥 댕 거리는 조율소리만내고 있는 나를 지루한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연주할 줄도 모르는 놈이 아는 체 하며 부질없는 고생을 하고 있다고 하는 것 같았다. 너무 오랜 기간 조율을 하지 않아 악기의 장력변형이 심하여 조율한 소리가 안정이 되지 못하고 쉽게 변하였기 때문이다.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나의 동료들까지도 부끄러운 듯 불만의 소리를 냈다. 그때서야 겨우 조율을 마친 나는 이정도면 비슷한 연주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마의 땀과 손바닥의 땀을 닦은 후, 주저 없이 <NEVER ON SUNDAY>를 작고 부드러운 소리로 천천히 연습처럼 연주하기 시작 했다. 그런대로 제법 듣기 좋게 들렸다. 굳었던 손가락이 풀리고 운집법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연주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연주소리가 점점커지고 템포가 제대로 빨라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카페가 조용해지고 만돌린 소리만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바텐더가 나의 연주를 위해 카페의 방송음악을 꺼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보답이나 하듯이 반복하여 전주와 간주를 제대로 삽입하여 완전한 연주로 내 자신이 도취된 듯이 눈을 감고 열정적으로 연주를 마쳤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과 손바닥의 땀을 닦으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때 까지 모두가 정신 나간사람들처럼 입을 벌린 채 초점 잃은 눈으로 나를 처다 만보고 있다가,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린 듯, 갑자기 박수와 책상을 치며 원더풀! 브라보! 앵 콜! 하며 모두 일어서서 멋진 연주라고 축하는 것이다.

  우리 선원들도 그 노인도, 예전에 미처 생각 못했다는 듯이, 진짜 음악가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장난처럼 허풍을 떨었던 3기사의 말이 진짜가 되자, 이번에는 일등항해사가 큰소리로 악성베토벤이 거리의 악사를 위해 바이오린 연주를 해주었던 이야기보다 더 멋지다고 큰소리로 떠들면서 노인의 모자를 벗겨들고 동전을 거두며 앵 콜을 선창하며 박수를 유도한다.

  나는 닥터지바고의 영화 속에 빠져 들 듯 <RARA'S THEMA>의 만돌린 소리를 조용히 흉내 내기 시작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카페의 분위기는 무아지경같이 침묵했다. 이번에는 연주가 끝나기도 전에 박수가 먼저 터져 나왔다. 앵 콜! 앵 콜! 하며 우리 테이블에 맥주가 2상자나 쌓였다. 이번에는 <ONE WAY TICKET>으로 화답했다. 아마도 이 카페에서 내가 할 줄 아는 노래는 엉터리든 아니든 두려움과 부끄러움도 모른 채, 화풀이를 하듯 코리언의 능력을 자랑하듯 미친 듯이 토스카의 아리아와 솔베이지의 노래 등 10여곡을 메들리연주로 마쳤을 때, 이 작은 카페는 손님들이 가득하게 서서 모두 술잔을 높이 든 채 원더풀 코리안! 을 외쳐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