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도교 입교 3년째의 반성

이 진 원  

 

1. 아버지의 동학을 찾다

  원망과 울분의 원망 속에서 이성을 가누지 못했던 나의 노년이었다. 그러나 2005년 10월 어느날, 무능한 여생이나마 아껴 합천이씨족보(전서공파보)를 전산화 하였다. 족보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위하여 가문의 사료를 발췌하던 하동군지에서 동학이,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동학이 사교(邪敎)같다는 지금의 천도교인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심한 전률을 느꼈다. 항상 온화하셨던 아버지가 그리웠다. 그리고 이버지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치며 나의 기억들은 컴퓨터 자판을 쉼없이 두들겼다. 하룻밤을 지새워가며 아버지와 어린 나의 이야기가 빠짐없이 채워져갔다.  A4용지 한 장을 알뜰히 채우지 못하던 내가,  20장이넘는 분량의 장문을 단숨에 써내려간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었다.

 「아버지와 나<오지바위의 전설>」이라는 단편이 완성되었다. 이 글을 자랑이라도 하고 싶어 나는 천도교 진주교구를 찾았으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아내가 옛날에 평안동에 있었는데 자기들 끼리만 친교하고 남들과는 조금도 사귀지 않는다고 하였다. 인터넷에서 천도교중앙총부를 찾아 보았다. 다른 종교단체의 홈페이지가 아니었다. 무슨 비밀이 많은지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자유게시판 마져 빗장이 걸려 있었다.  꼭 초창기의 인터넷 시골 초등학교 홈페이지 같다. 나는 부득이 회원 가입을 한 후 3일이 지나서야 게시판을 열어 볼 수가 있었다. 찌든 때같은 기득권이 홈페이지 곳곳에 먼지처럼 쌓여 곰팡냄새가 나고 있었다. 어릴 때의 그 신선하고 모든 것이 신기 할 정도로 새로웠던 아버지의 신지식인 도학의 신선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지성으로 노력하는 자에게 그대로 베풀어 준다는 상념은 하나도 얻을 수 없고, 천도교의 한울님은 돈을 내고 사야만 한다는 선입감이 앞섰다. 그렇던 홈페이지가 3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다.

  편안하고 자유롭게 접할 수 있는 천도교(동학)의 정보는 없었다. 다른 종교와 비교해 너무나 달랐다. 중앙총부에 전화를 걸어 진주교구장(도암)의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고, 그를 만나 곽창석씨의 전화번호도 알게 되었다. 곽창석씨에게 수차의 전화를 하였으나 받지 않다가, 어느날 나의 전화번호를 확인하며 '그 곳이 음식점 맞지요?'하고 물었다. 그래서 곽창석씨냐고 확인하는 나의 말에 대답도 없이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 후 한 두 번 더 전화를 해보았으나 허사였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외상값을 값기 전에는 만나보기 어렵겠구나 생각하였다.

  하동 옥종 고성산 위령탑사진자료는 현장을 찾아가 사진을 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11월 11일 11:00에 도암의 안내로 고성산 위령제에 참석하게 되었다.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고성산의 많은 이야기 중 한 두가지만를 아는 젊은 천도교인들이 조잘대며 아는척 할 뿐, 다른 사람들의 더 많은 전설에는 귀를 기울일 생각을 않는다.  이런 아집들이 고질병이 되어 무식하고 배타적인 벽창우 같은 지금의 천도교를 만들어 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달 남짓 인사동에 있던 진주교구 시일식에 참석하여 보았다. 새해를 맞은 2006년 1월 8일 첫째 시일날 한 동덕의 적극적인 권유로 입교식을 하였다. 서천문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 목이 메었다. 도암 교구장이 선물해 준 경전과 염주를 진심으로 고맙게 받았다. 고마운 마음으로 틈나는 대로 경전을 탐독했다. 어려운 말은 없었다. 고희를 바라보는 나의 인생이 새롭게 태어 나는 것 처럼 전율했다. 거듭 읽을 때마다 신선한 생각이 일곤 하였다.  수 십년을 공부한 대학강의의 동서양 철학들이 보편적가치를 주창하신 천도교경전에 자연스레 함몰되어 있음을 알게되었다.  열 여닐곱번 경전을 정독했을 무렵, 나는 도암과 함께 용담수련원 하계수련에 처음 참가하였고, 일주일 동안 영문도 모를 억울한 제 서러움으로 눈물만 흘린 부끄러운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왔다.

 

2. 포덕은 죄악이 될 수도

   일년 여 동안 나는 진주교구 소속의 교도들과 정신적 교분을 조금도 나눌 수가 없었다.  교회에서는 물론, 일상에서 교도들의 언행이나 정직함이 나의 의구심만 키웠다. 진주교구의 남녀 노소, 어린이들 까지도 '약속은 한울님의 믿음이자 천명' 이라고 생각하는 동덕은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교구장, 경리부장, 교무부장 등의 교직자들은 교회에서는 물론, 그들의 사사로운 약속도 제대로 지키는 일은 없었다.  종교단체가  친목단체의 두레정신보다 못한 신뢰성을 보고, 새로운 인생을 얻고자 누가 이런 천도교에 나오겠는가! 행여 지인들이 진리를 얻겠다고 나를 따라와서 저들의 배신을 보게 된다면 한울님과 스승님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너무나 두려워 오관을 잊을망정 내 혼자만이라도 스승님의 가르치심을 지킬 심경으로 이런 교회만 멀리하기로 결심하였다.

   나는 엄청난 기대를 가지고, 새롭게 태어날 자신을 얻었다. 옛날, 몸소 실천으로 현명하게 가르쳐 주신 부모님을 만나 보는듯 달려간 곳이 진주교구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본 것은, 이기심과 암담한 아집적 배타성이었다. 신선하고 현명한 신지식과 신정보를 효잡이란 이름으로 먹칠을 하고 있으며, 매매사사에 권리만 있고 책임은 거짓과 변명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의 작은 허물을 덮고 나의 작은 지식만 베풀라는 경전말씀을 교직자들의 부정한 죄악을 감추는데 악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게시판에 나돌았던 공금횡령과 배임행위의 꼴불견, 교단의 돈은 먼저 먹는 놈이 임자라는 꼴. 진주교구도 마찬가지로 마치 썩어빠진 한 가문의 종친회의 기득권자들의 모습과 같았다. 광박과 개방적 대교의 진리가 이런 가문의 종친회와 같아서야 무슨 종교라고 하겠는가.  진주교구도 우리가문의 종친회 처럼 개벽해야 한다고 주장했더니, 교직자 내수도들은 내 없이도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나더러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이 한울님을 위한 것이라고 빈정거렸다.

   어린 자식들은 부모님의 언행을 보고, 각인이라는 한울님의 의지로, 태어나자마자 시작하여 죽을 때까지 무의식의 습관천을 형성하게 된다. 진주교구의 어린이나 일부 젊은 교도들의 언행을 보면, 스승님의 가르치심을 잘 못 되새겨 한울님의 억울함이 통탄스러워 하실 것 같다.  천도교의 미래가 암담할 정도로,  천도교인(동학도)의 기본인 약속을 지킬 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식들로 부터 무능력자로 멸시를 당하고 있는 듯한 천지부모의 권위가 큰 죄악임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입교하여 수련하는 교인에게 일주일 내내 영문모를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것은, 한울님과 스승님의 서글픈 마음이 전해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전의 곳곳에는 스승님의 눈물자욱이 진하게 나타나 있다. 나는 천도교인의 육신과 마음과 성품을 개벽하기 위한 제일의 실천 과제는, 새롭고 신선한 지식과 신선한 정보와 우정을 효잡한 것으로 거부하는 자들을 사정없이 도태시키는 일이다.  흰종이 같은 신입교인에게 채색은커녕 곰팡이 포자를 뿌려 되 썩게 만들어서야 어떻게 포덕이 되겠는가. 교단이나 지방교구를 연원을 빙자하여 악착같이 사유화, 사교화, 가문화 하고 있는 종단지도자나 지방교구 주무관리자들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는가!

   나는 한울님이 무서워, 이들과 공범자가 되기 싫어서도 진주교구시일식 참배를 중단해야만 했다. 몇몇 친구들이 천도교가 어떤 곳인지 알고자 한다기에 더욱 그랬다.  일반 교도들의 애정어린 충고나 지적을 예절 바르게 반성하지 못하고 불손한 패륜아 같이 항거하는 젊은이의 꼴상을 참아 보일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신지식의 본보기라 했던 갑오경장시대의 동학이, 백년전의 모습 그대로를 지키는 꼴을 보여주기도 싫었다. 나는 친지나 친구들, 또는 대학생들에게 후천 종교란, 미래를 개척하고 새로운 지식과 역량으로 인간과 자연을 위해 재무장한 후 지상천국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 종교가 천도교(동학: 한국고유의 자생종교)라고 열변했던 일이 많이 있었기도 했었다. 그리고 좀 더 성품을 가꾸고 멋진 후천종교인들로 거듭난 후의 진주교구를 자랑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진주교구시일식에 나갈 때마다 마음을 상하고 돌아왔던 나, 서글퍼 하시는 스승님을 기억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내 혼자 마음 속에 진주교구를 품고, 언젠가는 빛나는 지상천국건설의 종자로 움틔울 것이란 희망을 가슴에 담고 있으니,  지금은 오히려 한울님과 스승님의 은혜를 더욱 고맙게 실천할 수 있어 행복하다.
   새로운 실천과 도약하는 아버지의 동학과 같은, 성사님의 천도교를 다시 재건할 수 있는 동덕을 한사람 두사람 모이게 하여, 환골 탈퇴한 진주교구로 새로이 탄생시킬 결심을 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회에는 나가지 않지만, 금년에도 도암장과 함께 용담수련원 하계수련에 두번째로 참가하여 새로운 마음을 얻어볼 결심을 하고 있었다.

 

3. 두 번째의 수련에서 느낀 것

    수련생이 작년보다 더 적었다. 금년에도 함께 수련하자고 말했던 동덕들의 얼굴이 두 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금년에는 마음을 비우고 도를 성취하자는 도암의 권도가 나를 참 슬프게 했다. 남의 잘못을 무조건 덮어주고 모르는 척하는 것이 도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개인에게 직접 손해가 없는데 잘못을 지적하여 그들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는 것을 무서워 하는 비굴함을 수도자의 득도로 착각하는 잘못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생전의 부친께서 문중의 재산을 개인의 재산보다 더 중하게 여기시며 매사에 우선하여 정성을 다 하셨던 모습을 상기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위토나 선산일 망정, 이것은 많은 자손들을 위한 것이다. 여러사람, 많은 사람을 위한 노동의 가치를 보람있게 여기는 것이 동학사상이다. 한울님은 한 개인의 욕망을 채워주는 땅이 아니라고 했기 때문이다.  교회의 적은 재원은 교인전부를 위한 한울님의 록이다. 이를 부정하게 지출하는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천벌의 대상이 된다. 더불어 이들의 행위를 묵인하는 것은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다.

  도암이 바라는 도인의 어진 마음이란 한울이 두렵지 않는 진실한 자존심이어야 한다.  비굴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한울님을 속이는 공범자임을 깨달아야 한다. 두 번째의 수련에 임하면서 나와 도암은 자존심과 자만심을 혼돈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수련에 참가한 동덕들의 모습을 보고 절실하게 깨달을 수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나의 자만심이 나의 자존심을 이기고 있었다는 것도 깨닫고 놀라기도 했었다.

   나는 자존심과 자만심을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을 두 번째 수련에서 얻었다. 그래선지 이번에는 그렇게 많은 눈물이 나지 않았다. 진실과 정직함에는 변명이 없다.  이것은 어버이의 마음과 같다. 이것이 한울님의 마음이며, 자존심이다.  진실과 정직함을 위하여 어떠한 희생과 처참한 순교를 할 수 있는 마음이 자존심이다. 아집을 위한 변명과 합리화가 바로 천지부모를 속이는 자만심이다. 잡념을 두려워 하지말고 知에 이르도록 하라는 말씀이 지존심과 자만심을 혼돈하지 말라는 계시다. 수련자 일부가 자기가 한울님을 모셨으니, 자만심도 한울님의 감응으로 여기는 것을 느껴보기도 했다.  한울님의 마음을 가진자 만이 한울님을 모시는 것이다.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이번에는 진주교구를 개벽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지금의 교구장이 예전에도 교회의 재원을 배임횡령하여 교구가 파산한 일이 있었으나, 그 책임을 지금까지 지지 않았다고 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교회를 재건해 볼 결심이 싹 가셔버렸다.  지금의 교구장을 비롯한 모든 교직자가 물러나지 않고는 도무지 회생 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년이 넘도록 경리보고나 감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예전의 경리가 감사를 맡았으나, 그들의 잘잘못을 구별하려 들지 않는다. 차라리 더욱 쇠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은 형국이다. 이것이  오늘의 천도교 모양새다.

  교회를 꼭 나가야(오관실행) 그들이 반성할 것이라고, 수차 진주를 방문하여 충고하여주신 진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현재의 교직자들이 모두 사임할 때까지 어렵게 되었다고 했을 뿐이다. 사실 교회를 가지 않는다고 하여 오관실행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회를 나간다는 빌미로 오관실행을 형식적으로 교모하게 회피하는 교직자(관리자)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네 기둥이 너무나 썩어 곧 무너질 집인줄 알면서 들어갈 수가 없다. 한울님이 출입을 금하는 흉가라고 계시를 붙여둔 곳처럼 마음이 내키지 않아 더욱 그렇다.

 

4. 세 번째의 수련을 마치고

  금년에는 아마도 혼자서 용담수련원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과 수련을 함께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두려워 할 도암 임을 작년에 알았기 때문이다. 작년 수련 때에 자존심과 자만심을 혼돈하고 있는 그를 보았고,  그로 인하여 내가 수련하는 목적을 깊게 깨닫기도 했었다. 그것은 내가 교회를 가지 않는 것을 자만심으로 여기는 도암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금년처럼 8월 1일이 기다려지는 것도 참 이상했다. 나의 예지를 확인하려는 심산인 것 같다. 역시 나 혼자 버스로 용담수련원으로 갔다.

  금년 수련자는 작년보다 더 적었다. 작년에 함께 수련했던 동덕은 한 사람 뿐이었다. 여닐곱명의 수련인이 이삼일을 번갈아 가면서 바뀌고, 삼년동안 함께 수련했던 동덕도 이틀 뒤에 오기도 했다. 금년에는 어떤 동덕의 행동이 나에게 가르침으로 바뀌어 세 번째 수련목표가 현명달덕하게 될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매년 올바른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게 하는 것은 수련하는 동덕들의 모습들이 나를 깨우쳐 주었다.

  수련원에 도착하여 원장선생님을 뵈었다. 첫 인사에 도암의 불참을 물었다. 아무런 연락이 없어 혼자 왔다고 했다. 원장 선생님은 도암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회에서 단체수련으로 가리산을 정했다는 것이다. 만에 하나, 진주교구가 단체수련을 한다면 교구의 개벽은 머지 않아 이루어질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임기응변을 위한 입버릇 같은 거짓임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도암이 나 때문에 그의 신념이라 자랑했던 부친의 애징이 담긴 용담수련원 하계수련을 비굴한 변명을 위해 중단하는 것은 그가 아직도 知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지금까지의 만일지공이 맹목적 각자위심을 위한 전시효과적 수련을 해온 허장성쇠임이 분명하다.   삼년동안 함께 수련하면서 나에게 보여준 동덕들의 조금도 변하지도 달라지지도 않는 마음가짐과 행동, 그들의 발상들이 혼돈된 자만심으로 고착된 것을 조금도 부인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련의 해가 바뀔 때마다 간절하게 어필하는 수련의 목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첫해의 수련은 억울함과 분노였다. 남을 원망하고 부정을 질타하는 감성적이고 결벽증에 가까운 수련자의 마음이었다.  다음 해는 도암으로 인한 자만심과 자존심을 혼돈한 어리석은 생활을 했왔음을 인식하고 반성하게 되었다.  

   이번 삼년째의 수련에서 나는 지만심을 자존심으로 바꾸어, 언제나 자존심만으로 살아가는 것이 知에 도달하는 것이 道라는 것을 알았다. 오직 실천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얻기 위한 건강한 여생이 수련에서 얻어진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존심으로 살아가는 방법은 우리 삶의 매매사사에 있다. 언제나 정직하게 봉사하는 것, 언제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언제나 약속을 지키는 것, 언제나 변명을 하지 않는 것이 자존심을 실천궁행하는 방법이다. 교회에서 입으로만 조잘대는 계명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실천방법에 있어서도, 그 차원이 높은 건강한 몸과 마음, 정신과 성품이 반드시 청렴한 바탕에서 이루어진 결과라야 만이 우리가 찾는 道를 얻는 것임도 알았다. 나는 그 청렴한 바탕은 올바른 수련에서 얻어진다 것을 깨달았다.  우리가 수련을 잘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올바른 수련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올바른 수련은 남을 위해 내가 정직하게 희생하고 봉사할 의지와 이를 위한 용기와 건강을 지성감천하는 마음으로 감응을 받아내는 것이다.

  즉 올바른 수련은'신의 의지를 바르게 얻고자 노력함'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한 윤리학자는 우리가 찾는 이 도와 같은 청렴한 의지를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이면에는 의지가 있는데 그것은 결코 죽어 버리지 않는다. 누가 이 의지의 신비로움과 활기를 알 수 있겠는가. 즉 의지란 신이 스스로 모든 것에 침투시키고 있는 바로 그것이며, 인간이 천사들이나 또는 죽음에 굴복하는 것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이다. -조셉·그렌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