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련

 

 

이 진 원     

     

   나의 경험으로 가끔 죽을 고비를 넘긴 직후에 느껴보는 세상이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기도 한다. 가문의 宗叔으로 동학사상에 심취하셨던 작가 이병주씨의 <어떻게 살것인가>라는 에세이에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은 올바른 삶을 깨닫는 첩경이라고 했다.  '살아가는 것이 죽어가는 것'이라고도 단언했다.  그리고 누구나 일생에서 세 번 이상은 죽을 고비를 당해본다고 한다. 그 때에 세상을 아름답게 보거나, 잘못된 생각을 바꾸는 정도에 따라 성공기회가 주어지거나 얻게 된다는 주장을 옳다고 여긴다.

   그 죽을 고비에서 간신히 살아 났을 때, 주위의 하찮은 풀이나 꽃, 나무나 바위가 그렇게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20여년을 해상생활에서 나는 매년 한 두 번의 죽을 고비를 당할 때가 많았다. 그때마다 무의식적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고개숙여 깊은 명상에 들기가 일쑤였다. 동료가 고맙고 주위가 아름답게 보여졌다.  격한 감성도 온유한 이성으로 바뀌게 되었다. 우리는 가끔 자기는 예외로 걸핏하면 '얼마나 오래살려고' 하며 남에겐 빗대어 말한다. 고희를 맞은 요즘 친구들은 사형집행직전에 석방되어 세상을 보는 사형수의 마음으로 여생을 살아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지난 3월9일 대신사순도145주기를 맞아 용담정에서 진암장을 비롯한 서울 부산 동덕들과 함께 죽음의 체험을 위한 철야수련에 참석했었다. 마음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임했다.  주위의 정성 때문인지 아무런 잡념도 힘든 고통도 없이 멍청하게 철야를 마쳤다. 새벽 5시반이 되자 모두들 여명을 따라 총총히 헤어졌다. 안전운전을 위해 나는 혼자 새로지은 진성관의 작은 식당방에서 아침잠을 청했다. 옅은 잠결 속에서 아버지의 옛날 이야기가 생각났다. '모든 일은 수련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벌떡 일어나 눈을 감고 편안히 앉았다. 삼난의 해법이 아버지의 말씀 속에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해월신사 모습을 닮은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수련의 진의가 있었다.

   예전에는 수련을 한낱 연습이나 훈련으로 여겼고,  모든 일을 힘들지 않게 편안히 하라는 뜻으로만 알았다.  천도교에 입도하여 3년이 지나고, 패기를 잊고 고희를 맞은 지금,  수련이란 귀한 믿음(신뢰와 약속)임을 깨달았다. 단언하여 수련이란 매사에 반성과 참회로 임하여 같은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  곧 한울의 의지를 올곧게 지키는 마음가짐이었다.  앞을 보면 인간만사가 천도임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고,  뒤를 보면 약속은 한울님의 의지를 지키는 것이며, 양 옆을 둘러보면 毋自欺愼其獨으로 자신을 속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수련이란 이를 실천하며 살아가는 <邪無思의 인생>이다.

 

  어린 학창시절에 아버지가 들이나 산에서 일을 하실 때,  아버지 곁에서 힘에 부친 일을 함부로 덤비며 하는 모양을 보신 아버지는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밭 가운데 솟아있는 바위돌을 파 옮기려다 괭이와 삽을 부러트리고  하루일을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통나무를 지개나 손수레에 함부로 실어 쏟아아지게 만든일도 있었다.  패기를 앞세워 닥치는 대로 낙역을 쓸 듯 두서없이 서둘다보면 다시 바르게 고쳐해야하는 일이 많았다. 이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조용한 말씀으로 타이르신다.

「야 야, 공부든 일이든 수련하는 마음으로 하거라!」
「그럴 시간이 없어요, 후딲 해치우고 집으로 가야지요….」
「일은 순서가 있재… 그 순서대로 해야 수헐코 빠른기다.」
「어떤 순서예……?」

   아버지의 말씀을 이해 못하고 낑낑거리며 설쳐대는 나를 보다 못한 아버지는 밭두렁에 앉아 곰방대에 불을 붙여 무시고 좀 쉬었다 하자시며 나를 부르신다. 아버지 곁으로 온 나는 이마의 땀을 옷소매로 훔치다 얼굴에 흙이 되 묻는다. 웃옷을 벗어 흙을 털고 다시입은 후 아버지 곁에 조용히 앉았다. 아버지는 작심이라도 하신 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신다. 오늘 일은 그만해야겠다는 표정이시다.  아버지는 나를 바라 보시며 말씀을 시작하신다.  풀냄새의 향기 같은 담배연기가 고개숙인 내 코 끝을 스쳐지나간다. 맑고 상쾌한 산들바람에 실린 탓인지 담배향기가 싫지않았다.

 「구용아, 내 말 잘 듣거라. 아무리 가르쳐주어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인성이 없는기다. 동학에서 이런 사람을 하우라 하재. 그저 운에 따라 사는 짐승과 다를게 없다는 말이다.  역발산의 패기와 능력있는 것같이 설쳐대면 처음은 영웅같이 보일지 몰라도 뒤에 마음과 귀를 열지 않는 사람은 존경과 믿음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

「니한테 선생은 친구나 선후배나 누구거나 다 되는기다. 남이 가르쳐주는기나 잘못을 지적해 주면 알아들을 줄 알아야 실수를 않고 지혜를 얻는 기라.  선생과 지혜는 많을 수록 좋은기다. 지혜는 한울님이 정직한 사람에게만 주는 은혜 인기라.  이 지혜가 건강도지키고, 음식도만들고, 옷도만들고, 집도짓고, 친구도 사귀고, 사랑도 하게 해주는 기란다.」

「……?」

 「니처럼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은 그 지혜를 얻을 수가 없는기라. 한울님이 사람에게 지혜를 줄 때는 꼭 사람을 통해서 주는 기란다.  한울로부터 지혜를 바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성인이나 신선뿐이다.  사람들이 한울로부터 지혜를 바로 얻어보려고 열심히 수련을 하지만 제 옆에 있는 한울도 모르면서 멀고 먼 한울을 찾으니 기약없고 부질없는 짓이되지.」

「……?」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저주로 바꾸어 항상 원망과 원한을 사고 남을 불신하고 시기하여 제죽는 길로  가는 기라.  사람이나 동물, 식물, 모든 물건이나 일도 크고 작은 것이 따로 없는 것이고,  중하고 하찮은 일도 따로 없는 기다.  귀하고 천한 것도 따로없고, 죽고 사는 것도 실은 다 같은 기다. 작은 풀이나, 꽃이나, 나무나, 개미같이 작은 벌레나 사람의 목숨도 살고 죽기는 같다는 말이지.」

「……?」

「많은 경험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도 고집과 이기심이 많으면 지혜를 얻기 어렵다. 또 이런 사람은 경험과 지식을 거짓 위장하거나 변명하는데 사술로 쓰니까 邪道라 하지.  지혜없이는 正道를 가기 어려운기다!」

「……?」

「한울님은 한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밭이나 산이나 집에나 없는 곳이 없단다. 그런데 사람이 한울님이 계신곳을 너무 더렵혀서 우리곁에 있지 못하게 하니 감응을 받지 못하는기라. 니가 괭이와 삽을 부지르고 철봉과 손수레를 망친 것은 한울님이 우리일을 도와주지 못하게 한 일인기다. 한울님이 오늘은 일을 그만하라는 것만도 다행아니냐!」

 

용담교구에서 대신사순도145주기 선열합동위령식에 참석한후 용담수련원원장님 내외분의 따뜻한 배려와 전송을 받으며 감사한 마음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깨우침을 얻은 간밤의 수련할 때의 마음가짐으로 집안의 모든 문을 열고 한울님이 구석구석 어느 곳이나 편안히 계실 수 있도록 하자는 마음으로 내마음에 들 때 까지 청소를 했다. 싱크대밑에도 먼지 하나 없게 말끔히 닦고 천장과 벽, 창문과 창고, 책장과 서람까지도 말끔히 어디애 손을 놓아도 먼지 하나 묻지 않게 청소를 했다. 언제나 이같이 한울님 계신곳을 깨끗이 하고 나 또한 한울님 계신 곳을 틈나는 대로 보살펴야 한다는 결심을 해본다. 이런 항심을 지키는 것이 한울님을 모시는 마음가짐이라 깨달았다.

  어제 밤은 너무나 편안한 잠을 잤다.
  개운한 아침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아침부터 이기심으로 가득한 한 인간이 나를 자극했으도 감성으로 대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순서대로 하나씩 뜻대로 이루어져 갔다.
  '한울님 감응하심이 이런 것이구나!' 하고 혼자 탄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