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선장 이야기(2)


글/ 이 진 원    


   Tanker는 유조선을 말한다. Oil Tanker, Oil Carrier를 간편하게 Tanker라고 한다. 승선조건에 위험수당이 좀 붙어 급료가 일반화물선보다 다소 많다고 하나, 바쁜 일정과  엄격한 안전규율과 규제, 이를 빌미로 받는 지나친 스트레스에 의한 피로감은 오히려 착취를 당하듯 박봉을 받고 있는 것을 얼마가지 않아 알게 된다.

  궁했던 옛날에는 봉급이 조금 많다는 이유로 죽든 살던 무작정 유조선 타기를 원했고, 그러다 보니 유조선 승선대기자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선원들도 행복지수의 질을 따지기 시작하여 유조선 승선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유조선 운항에 지장을 초래하게 되자, 회사는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악한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회사의 경영자들이 아니라, 한 배를 타고 생사고락을 함께해야하는 ‘이런 선장’들이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선장은 선원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돌보며 행복지수를 조성해야 할 바다위의 무관의 제왕이다. 위험한 선박일수록 선장의 리더십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다.

  회사는 승선 대기자가 유조선 승선을 서로 기피하게 되자 승선경험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휴가 만료된 일반선원과 사관을 순차적 강제승선을 시켰고, 불응하면 근로계약해지로 간주 하였던 것이다. 이 바람에 나는 처음으로 중동과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일본으로 원유나 휘발유(납사) 등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는 총톤수 8만 톤의 이 배에 일등기관사로 승선하게 되었고3~4개월 만에 하선한 일이 있었다.


  특별휴가기간이 끝나 가는데도 아내와 아들의 갈등은 극에 달한 채 집안은 안정이 되지를 않았다. 아무리 해도 배타기를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친구의 조카가 대학장이고, 친구가 서무과장으로 있는 대학에 행정사무원으로 발탁하려는 아그레망을 받았다며 곧 발령이 날 것처럼 소식이 전해왔다. 하나뿐인 아들 교육 문제 때문에 배를 내릴 수 있도록 나를 고용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이를 지켜보며 애를 태우는 노년의 어머님 더 안타까워 대학교 서무에 발령이 나면 월급이 적더라도 승선을 포기할 결심이었다. 발령을 기다리며 차일피일 승선발령을 미루다 보니 6개월이 지나고 당장 생활에 궁핍을 느끼게 되었다. 회사에서 이번에도 승선하지 않으면 해직통보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무것도 나의 뜻대로 이룰 수 없는 어려운 형편이라, 이 상황에서 하루속히 탈출 하고픈 심정이라 오히려 승선 발령이 너무나 반갑기도 했었다.

  그리고 처음 타는 위험한 Tanker라는 것을 알면서도, 기관사는 직접 하역작업관리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일반 화물선박과 특별하게 어려울 게 없다는 생각으로 승선을 결심하였던 것이다. 주름살이 더 깊어 보이는 노령의 어머님은 차라리 배를 타고 나가는 편이 더 낳을 지도 모를 일이라며 처음과는 달리 승선을 허락하셨다.


  아들 노아를 가까스로 달래어 학교에 꼭 등교하기로 약속을 받은 후, 나는 1979년 3월 6일 부산항 제3부 내항에 대기 중이던<SANKO GERD>에 올랐다. 배는 기다린 듯이 내가 승선하자마자 뱃고동을 울리며 오륙 도 밖으로 조용히 미끄러지듯 나왔다. 도선사가 내린 후 거대한 위용을 자랑하며 인도네시아로 향하였다.

  10년 전만 해도 인도네시아는 국민의 생활의욕이 비교적 낮아 민생고가 눈에 뜨일 정도였다. 수하르토 장군이 집권중인 군부의 계엄정부시절이라 모두가 군복을 입고 총을 메고 있는 국가였다. 그 당시는 1달러면 모든 것이 통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원유가 생산되고부터 국민의 의식 수준과 생활이 엄청나게 달라져 카페나 음식점등이 차원을 달리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의 원유는 파라핀계열의 원유로 중동지방의 나프타계열의 원유보다 휘발성이 낮아 비교적 안정성이 높다고 한다. 많은 배가 기다리고 있어 우리배의 접안자리가 나지 않아 이삼일을 대기하게 되었다.


  이배의 선장은 KKC라는 선장이다. 사람은 작고 왜소하게 보여, 얼핏 보면 의지적으로 보이나 사실상 불만과 욕구부족으로 똘똘 뭉쳐진 한말의 가난한 양반의 서자 같은 사람이다.  그가 용케 기회를 만나 선장이 된 것 같은 사람이다. 그러니 남과의 타협을 한다거나, 남을 배려하려는 정상적인 사고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고, 완전무결한 자기본위, 자기위주의  부모 없이 자란 망나니 같은, 세인들이 부르는 ‘호로 자식’의 표현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은 매사가 자기책임이라는 말로 자신의 권리를 확장하고 만능으로 만들면서도 잘못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철저하게 전가하려는 비열한 술수가 모든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자신의 변명입지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K선장은 자신의 관할 업무부서인 항해사들보다, 기관사들이 편안히 쉬거나 외출하는 것을 싫어한다. 기관장을 들볶아 기관사들에 스트레스를 주다 못해 이제는 직접 기관사들에게 업무를 지시하기도 하는 것이다. 엄연히 선장과 기관장의 업무 한계는 서로 다르다. 물론 화물운송을 원만히 하여 극대이윤을 창출하기 위하여 협력하고 유대 해야 하는 궁극목표는 같지만, 기관사와 항해사의 관할 업무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내가 처음 사관식당에서 식사를 할 때도, 그가 들어와 자리에 앉아마자 1기사는 탱커가 처음이니 상황파악을 좀 더 철저하게 확인하고, 되도록 외출을 삼가라고 명령한다. 전임 1기사가 인계를 마치고 헤어질 때, 선장과 3항사 때문에 3개월 넘기기가 힘들 것이라고 하며 내가 세 번째니, 잘 참아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그래선지 사관들이 K선장과 함께 식사하기를 꺼려한다. 심지어 개도 밥 먹을 때 건드리지 않는데, 밥을 편안히 먹는 것도 못 보는 친구라고 불명을 한다. 이러니 식사시간이 길어지게 되고, 식당 근무자들은 식사시간을 지켜주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한다. 살론 보이의 말대로 차라리 밥을 굶는 게 낫지, 선장과 함께 밥을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 때 선장은 식당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1등기관사가 바뀌고 나니, 다시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것이다. 전임 1등기관사와 선장은 원수 같이 대립하다가 결국 1기사가 하선을 당하고, 내가 승선할 때 까지 일주일동안 부산항에서 기다렸다는 것이다. 나 역시 마음 내키지 않았던 유조선 승선이라 어안이 벙벙한데다가, 승선하자마자 첫 숟가락의 밥을 먹는 나에게 외출 금지명령을 내리는 선장의 태도가 이상스럽게 여겨지기도 했으나 그럭저럭 첫 항해에 임했던 것이다.

  부산에서 승선하여 지금까지 외출 한번 할 여유도 없이 첫 항해를 무사히 마치고, 이번에는 중동 두바이에서 휘발유(납사)를 가득히 실은 거대한 배를 몰고 인도양을 거쳐 좁은 싱가포르해협 과 일본 해협 등을 거치며 길고 긴 엔진스탠바이 상태에서 눈 붙일 틈 없이 가까스로 요코하마내항에 도착하여 접안을 무사히 마치자마자 하역작업이 시작 되었다. 

  기관장은 장시간 동안 기관 운전을 하고 들어온 나에게 잠간 동안이라도 눈을 붙이고 쉬라고 하였다. 내일 새벽쯤이면 다시 출항을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휴식은 나에게도 필요 했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 샤워를 하고 침실에 들어 누어 잠을 청했다. 너무나 긴장된 시간이 길어선지 금방 잠이 들지 않았다. 그러다 잠이 살며시 들려는 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저 3항산데요, 기관실에 누가 당직을 서고 있어요?」

「이 사람아, 기관실에 전화를 해보면 알지, 왜 잠자는 사람을 깨워!」

「선장님이 하역 중에는 기관실 당직을 1기사가 서랍니다.」

「지금 기관실에 기관장과 3기사가 당직을 서고 있네.」

「선장님이 잔소리 말고 당장 내려가랍니다.」

「선장님 좀 바꿔주게!」
「선장님이 바꿀 필요 없이 바로 내려가랍니다.」

「지금 당직시간은 3등기관사 근무시간이야, 24시간 잠을 못 잤네, 한잠자고 내려간다고 전하게.」

「아무도 잠잔 사람 없으니까 당장 내려가시오!」하며 전화를 끊어 버린다.

3항사가 좀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피곤하여 잠시 눈을 부치고 누어야겠다는 생각이었으나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임 1기사의 말이 생각났다. 3항사와 선장이 좀 괴롭힐 것이라는 말이었다. 어떻게 자기의 근무시간과 책임한계가 명백한 당직시간까지 무시하고 선장이 3항사 입을 빌려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입하며 불면증을 유도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참기로 하고 눈을 붙이려 하니, 또 벨이 울렸다.

내가 귀찮은 듯이 전화기를 천천히 들자마자 

「야! 이 새끼야 선장의 지시가 우스워! 당장 기관실로 내려가!」하는 소리가 났다.

「너 누구야!」

「3항사다! 왜!!」

「너, 지금 어디야!」

「브리지다, 왜!」하지 않는가.

「이자식이 너, 그 기 좀 있어!」하며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섰다.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다. 3등 항해사란 놈이 1등기관사에게 이 새끼 저 새끼 하는 배가 세상어디에 있단 말인가! 아무리 선장이 사주 한 대로 간접 직접명령을 내리더라도 공손하게 전달해야 한다. 15년을 넘게 배를 타보았지만 이런 일을 조장하는 선장도 처음 본다.  

  화를 참지 못한 나는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채로 선장 방문 앞, 브리지로 통하는 계단에서 선장과 마주쳤다. 선장은 3항사가 저리른 말썽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고 선교에서 피하려고 나오다가 계단위에서 맞닦드리자, 내가 브리지로 올라가려는 것을 막으며 버티고 서서 나의 태도를 노려보는 것이다.

 나는 화를 참고 조용한 말로  

 「캡틴께서 3항사를 시켜 이런 질서를 만들 수 있습니까!」

하고 말을 하자마자 선장은 대뜸

「짜식아, 선장을 무시하는 질서가 어디 있어 임마!」하며 사정없이 나의 오른쪽 따귀를 때렸다. 어떨 결에 한 대 얻어맞고 선장을 보며,
「캡틴, 너무하는 짓이 아니요?」하자 또 <이게!>하며 왼쪽 뺨을 후리치려고 왼손을 휘두른다. 이번에는 더 참지 못하고 그의 왼손을 막은 손으로 내가 그의 오른 뺨을 한 대 후려쳤다. 그는 맥없이 쓰러지며 계단 아래로 고동처럼 또르르 굴러 바닥에서 기절해 버렸다. 나는 그를 일으켜 앉히고 정신을 차리게 한 후 '선원을 자식처럼 아끼는 선장이 되시오!' 하고 그대로 내 방으로 내려와 버렸다.

 

  다음날 하역이 끝났는데도 배는 출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선장이 1기사를 하선 시키지 않으면 자기가 하선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있었다. 선박 지점장과 본사의 부사장이 긴급 출동하여 무슨 연유인가를 나에게 물었다. 참아 3항사와 선장의 이야기와 선장을 때렸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선장의 말을 인용하며 위험한 선박에서 선장에게 항명 했다고 인정 하여 주었다.

  수첩을 찾아들고 하선준비를 할 때, 기관장은 선장의 부당한 고집을 꺾지 못해 미안 하다고 했고,  공항으로 출국안내를 하는 본사직원은 부당한 권고하선을 알면서 참아주어 고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