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경 농법

 

웅암 이진원

 

 

    20여년의 해상생활을 접었다. 선박회사에서는 승선을 거부하는 나에게 퇴직금까지 위약금으로 상계해버렸다. 나는 철없는 아들의 교육을 빌미로 하선을 결심했다. 찌들어 고달픈 삶을 도피하고자 하급기능직을 버리고, 세계주유를 위해 배를 탔으나, 귀거래사처럼 뭍으로 돌아왔으나, 나에겐 송곳 꽂을 땅 한 평 없다. 부산의 집을 팔아, 1983년 진주시내의 남강가에 1500여평의 포도원을 샀다.

    당시만 해도 농촌이 더 여유로워서 귀농이란 이름이 방송매체를 타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지방공무원들은 외부전입자들에게 직권남용의 덫을 씌워 기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 하였다. 나역시 이덫에 걸려<장 만>의 시조처럼 그의 황혼을 닮아가고 있다. 나는 자유로운 삶이 영농이고, 노력의 대가를 정직하게 얻는 것이 농사라 생각했다. 이것은 어릴때부터 각인된 선친의 잔상 때문이다. 그러나 결실은 수확만큼이나 반대급부의 의무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농가잔치에서 이 반대급부의 형평을 유지 할 수 없게 만들거나 농촌을 타락의 수렁으로 몰아 넣는 것은, 독사보다 무서운 부패행정과 농협금융비리의 외적간섭 때문이라는 취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보다 더 그럴듯하고 유식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의 농업환경이 자연에 순응한 '天下之大本'의 율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그 외적 요인도 농민이 스스로 조장한 기득권때문'이라고 성토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이들의 주장에 공감하며, 복합영농으로 수입이 대단한 일가의 잔치집 넓은 마당 아래창고에 트랙터와 콤바인과 소형농기계를 보관한 현장이 보였다. 겉 모습은 미국 남부의 농가로 착각할 정도였다.
  '못된 일가 촌수가 높다'는 속담이 나를 두고 한 말일게다. 영농주는 내보다 4살 연상이지만 조카뻘이 된다. 이 고장에서 영농부호라고 인정을 받는 사람이다. 나는 영농기계의 구입가격, 사용시기와 관리방법에 대하여 물어 본 후, '족질(族姪)은 영농기계를 사용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큰 소리로 힐책하였다.

    나의 큰 목소를 듣고, 잔치의 축하객으로 오신 많은 사람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나의 주위를 둘러싼다. 잘란체 하는 나의 코를 깔아 뭉개 버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아마도 나를 농협직원이나 농촌지도소, 아니면 군면에서 파견나온 부패관리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승선때, 배가 정박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면, 미래의 꿈을 위해, 구미의 영농과 동남아 등지의 유명한 기업영농지를 견학하면서 선진영농에 대한 겉 모습과 농민들의 사고방식에 대해 물어보고, 그들과 진지한 대화도 더러 나누어 본 기억을 떠 올렸다.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느낀 우리농민과 선진농민의 다른 점을 농민이 많이모인 이 자리에서 성토를 해야겠다는 오기가 났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성토하는 말을 듣고, 깊이 반성하는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오늘 즐거운 잔치집에서 진지하고 정직한 토론을 갖는 것은 미래를 위한 좋은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계신 영농대가들과 영농을 처음시작하는 저의 생각을 비교해 보고싶습니다. 저의 물음에 정직한 대답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말한 후에 호홉을 가다듬어 말을 계속하였다.

「여러분들 중에 트랙트나 컴바인, 경운기나 소형관리기를 논밭에서 사용한 직 후, 깨끗하게 세척하고 건조시킨 후, 구리스부나 다른 윤활부에 기름을 친 연후에 비를 맞지 않고 깨끗한 장소에 기계를 보관하고 계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여기저기서 웅성대며 그렇게 하는 사람이 세상천지에 있을리 없다는 표정들이다.

「저 아래 창고에 넣어둔 컴바인과 트랙트와 소형농기계를 보십시오. 모두 흙과 뻘이 붙은 채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 봄까지는 이대로 있겠지요. 그 때는 벨트와 체인, 모든 로타의 윤동부가 녹이쓸고 부식될 것입니다. 기계를 망쳐놓고 농번기에 수리할 곳이 없다고, 아프터써비스를 받을 곳이 없다고 국가를 탓하겠지요. 엄청나게 비싼 기계를 반값으로 샀으니, 기계의 수명도 그 반으로 줄이는 것이 여러분의 생각입니까? 그 절반도 여러분의 피땀으로 낸 세금입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공감을 표하면서

「참 옳은 말씀입니다. 실은 그 반값도 공동기금으로 샀기 때문에, 비싼 기계를 남의 것으로 여기면서 함부도록 쓰고있지요!」하고 불만을 토로한다. 나는 이말을 더욱 중하게 부각하고 싶었다.

「여러분이 공동기금으로 구입한 기계라면, 그 기계의 관리도 공동의 책임으로 해야 합니다. 쓸때만 권리를 주장하고, 유지관리의 공동의무는 회피하면 본래의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직접 관리할 수 없다면 전문인에게 위탁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기계의 성능은 기금을 조성한 사람의 수를 곱한 만큼 수명을 연장시켜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선진국 농민의 생각과 우리 농민의 생각이 다른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것부터 먼저 아끼는 두레정신의 복원이 '농자천하지대본'의 율을 되찾는 귀중한 일이라 저는 믿습니다.」하고 열을 올렸다.

흥분된 내 목소리가 좀 커졌는지 한 사람이 말을 막듯이 급하게 말을 한다.

「젊은 사람이 제법 아는기 있네, 일가 못된 삼춘이 아인것 같구마!」하고 추임새를 넣자, 옆에 있던 나이 지긋해 보이는 어른도 거든다.

「젊은 사람이 아이거마, 자네들이나 비슷해. 옷을 아들처럼 입고 다닌깨 젊어 보이능기라!」

「나이가 우찌되는데요-?」

「환갑진갑 다 넘었다더마.」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말이 맞다는 맞장구다. 나는 기분이 났지만 웃지않았다. 우리도 선진국처럼 합리적 사고를 가질 수 없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 선진국의 복합영농에서는 단편적이고, 단기적 이윤을 극대화하지 않는다. 장기적이고, 영속성을 가진 자연순환법칙을 복합영농에 부합시키려고 노력한다.

참 현명하셨던 우리 선조들이 오랜 세월동안 추구해 왔던 농법, 천하지대본의 영농원칙을 오히려 그들이 대규모 복합영농에 적용하고 있었다. 우리 것을 우리가 모르고 있다는 이 말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없이 멍청히 앉아있던 문중의 총무와 눈이 마주쳤다. 총무는 움찔하며 제발저린 도둑처럼 벌떡일어나,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헛 기침을 한번하고 큰 소리로 투털대듯 말한다.

「아, 다 ― 나좀 보시오. 이 아재가 아침에 나한테 뭐라꼬 했는지 아능기요! 지금도 기막혀 죽을 지경이요! 여기 농촌지도관도 있으니, 내 대신 좀 물어보시오.」

하고 변명인지, 나를 험집내어 동정을 바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마당 가장자리에서 거나하게 얼굴이 붉어진 농촌지도관이 뭔지 말해보란 듯이 웃으며 일어선다.

「아, 오늘 아침에 아재가 잔치에 가자고 집에 처음와서, 우리 축사를 한 참 둘러보고, 인쌍을 팍 쓰면서 나더러 소돼지를 모두 내다팔고, 다시는 키울생각 마라캅디다. 배타는 사람이 뭘 안다고 아침부터 농사꾼 기죽이는 이유를 말해 보라고 했더니, 소돼지 키울 자격도 없고, 집구석도, 나라까지 망칠끼라고 하는기라요! 잔치 마치고 들어 볼기 아이고, 사람들 앞에서 아재 말을 듣고 싶네요!」하고 말하면서 농촌지도관을 바라본다.

총무도 축산경륜이 제법 있는데, 자존심이 퍽 상한 것 같다. 이 말을 듣고 농업지도관이 나를 처다보며 한마디 뱉는다.

「오늘, 못 된 일가소리 들을만 했소. 어디 남의 아재말 좀 들어봅시다.」

사뭇 시비조로 익살을 부리면서 총무옆으로 가서 앉으며 술잔을 받는다. 나는 잔치 후에 잘못된 현장을 지적해 주려고 했으나, 부득이 지금 말할 수밖에 없었다.

「지도관님의 전공분야는 무엇입니까.」하고 나는 되물었다.

「저는 원예작물입니다. 그래도 축산에 대한 정보도 서로 제공하며, 농진청 교재도 전해 줍니다.」

「그럼, 축사신축때 기초지식을 미리 제공하여 주겠네요?」

「기초설계를 사전에 상담하는 분도 있으나, 원칙대로 하지않고, 대부분 돈 적게들여 멋대로 지어놓고, 말썽을 내지만 결국은 사후약방문이지요.」

「원예작물도 건강히 자라야 좋은 식품이고, 고가 상품이 되지요?」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지.」

「원예작물이 경사지에서 건강히 자랍니까? 평탄지에서 건강하게 자랍니까?」

「작물의 생육 특성에 따라 다르지만, 비닐하우스나 여타 시설작물은 수평을 유지하지요. 작물을 건강하고 균일하게 양산할 수 있고, 능율적이고요.」하고 말하면서 뚱딴지같은 질문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여러 가지의 문제점 중에서 가장 공통적인 것을 지적해 주고 싶었다.

「우리 총무의 축사가 잘못된 점은 여러가집니다. 우선 한가지를 말씀 드리지요. 여기 계신 여러분들도 예외가 아닐 것같아서 말입니다.」

실은 제가 지금 말하려는 것도 신농이라 별명을 들으신 선친께서 제가 어릴때 말씀해 주신『삼경농법』이라는 것입니다. 천도교 경전의 가르침이지요.

「여러분이 지금 사용하는 축사의 바닥이 정수평으로 되어 있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겠습니까?」하고 한참을 둘러 보았다. 한 사람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여러분들이 밥먹고 대소변을 보고 잠을 자는 바닥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으면 편안하겠습니까? 아마 정상적인 건강을 유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것은 평안한 마음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고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였으나, 한 사람이 웃기려는 듯이 익살을 피운다. 아마 네발짐승은 괜찮다는 뜻인 것 같다.

「사람도 다리를 두 개 더 달면 되겠네!」하면서 막걸리 잔을 비운다.

「네발짐승은 상관 없다고 생각하시나 본데, 네발짐승이 오히려 사람보다 더 평탄한 집을 원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심지어 기계인 자동차도 수평을 유지 하기 위해 독립현가장치로 지면이 경사지거나 요철이 심한 곳에서도 수평으로 달리게 만듭니다. 사람이나 가축도 평탄한 곳이 아니면, 마치 여진속에서 불편한 생활을 하는 것이나 같습니다. 인체해부학상의 달팽이 관이 밸런스를 유지하지 못하여 생명세포가 스트레스를 받아 병들게 될 것입니다. 자세가 불안하면 마음도 불안해 집니다. 사람이나 가축이 건강한 발육을 하지 못하고 만병을 얻는 원인은 바르지 못한 척추 때문입니다. 바른 척추는 바른 자세에서 생깁니다.」

그러자 한사람이 불평처럼 대꾸를 한다.

「작은 경사는 네발짐승에게는 별로 지장이 없고, 똥오줌 치우기도 편해서 모두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저는 지금도 별로 큰 지장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하며 별일도 아닌 것을 침소봉대하여 말한다는 것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생각의 차이가 선진외국과의 차이란 점을 설명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옛날에는 한 마리의 소가 온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가족처럼 지냈습니다. 구제역이란 돌림병이 생기면 네발에 똥오줌도 묻히지 않을 뿐더러, 더러운 곳의 푿도 먹이지 않았고, 겨울에는 소죽(발효된 조사료에 소금 간을 맞추어 끓여 먹였다)을 먹였고, 심지어 논 밭을 갈고 난 뒤에 소의 네발을 깨끗하게 씻겨 소마굿간에서 편히 쉬게 하였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선직국은 중요하게 여깁니다. 선진국 견학소감을 간단히 말씀드려도 될까요?」

하고 주위를 둘러 보았다. 관심이 없으면, 이 자리를 떠나버리고 싶었다. 그때 지도관이 조용한 말로 해보란 듯이 나를 응시하며

「우리 선진국 견학하는 셈 치고 한번 들어 봅시다.」

하고 농촌지도관이 진지한 얼굴로 주위를 선동하듯 둘러본다.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내가 본 선진국의 축사를 기억하는 대로 설명했다.

「선진국이나 여러분이 가축이나 작물의 생육에 필요한 조건을 제공해 주는 것은 같습니다만, 가축이나 작물의 입장에서 매사를 고려하는 정도의 차이가 다릅니다. 예를 들면, 나무로 된 반듯한 마루청에서 깨끗한 네발과 몸으로 잠을 자게합니다. 한국처럼 경사진 시멘트 바닥에서 배설물을 밟거나, 몸에 묻힌 더러운 몸으로 한자리에서 먹고 자게 하지 않습니다. 가축의 수효에 걸맞게 필요한 신선한 공기량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가축이 발산하는 탄산가스로 인한 호흡기의 질병도 예방합니다. 이 두가지만 보아도 여러분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좁은 축사에서 밀식으로 오염된 사료를 먹이고, 억지로 살을 찌게하는 것은 병든 가축을 만들어 내는 것이나 같습니다. 구재역을 확산시키는 것도 사람입니다. 가축이 바이러스에 저항할 능력을 가지고 항체를 생성하는 자정 능력을 갖도록 해 주기는커녕, 인간의 탐욕이 그 것을 말살시키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런 우리의 영농방법은 짐승은 물론 다른 생명의 연쇄괴멸을 가져온다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열변을 했다. 모두다 또랑또랑한 눈으로 나위 일거수 일투족을 응시하는 축하객들의 모습이 진지해 보였다. 그때 농촌지도관이 분위기 반전을 한답시고 조용하게 말을 잇는다.

「나는 하고 싶어도 못했는데, 내가 할 말을 남의 아재가 대신 나를 꾸지람하는 것 같네요. 처처히 옳은 말씀입니다. 술이 다 깨는구마. 공부는 다음에 하고 자자 술이나 듭시다. 잔치집이 영농 강습장 같애서야 원―자.」하고 지도관이 근배를 청한다.

나는 더 이상 하고 싶은 몇가지 말을 접어야 했다. 총무가 생전 못하는 술을 마셨는지 얼굴이 홍당무같다. 나는 웃으면 그의 곁으로 갔다. 주전자를 들고 대접을 내민다. 컬컬한 목에 모처럼 마시는 막걸리가 달콤하고 쉬원했다. 답답한 가슴이 쉬원하게 뚫리는 기분이다.

「어―좋다. 술맛은 언제먹어도 그맛이야. 고향이 바로 이 술맛인기라.」하고 말했다.

「그렇고 말고」하면서 너나 없이 잔을 들어 축배를 올린다. 오늘 잔치가 보랍있었다고 신랑신부가 내 앞으로 다가와서 '할아버지!'하고 인사를 하며 보람있는 축사를 들은 것 같다고 인사를 한다. 나는 속으로 참 보람있는 잔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 오늘 신랑신부는 부모보다 젊은 할아버지가 있어 더 행복해 보인다야.」하고 동리사람들이 놀려 대기도 했다.

돌아오는 길에 총무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 모습이 협박조다.

「아재, 오늘 다른 지적도 다 이야기 해주고 가시오. 그냥 돌아갈 생각은 말아요!」하면서 나의 손목을 잡는다. 처음보다 진지하고 걱정되는 눈치였다.

「그러지 뭐. 십분이면 될 걸. 돈 든다고 타박만 안하면야…….」

「바닥 말고 또 큰 돈 들게 생겼구마.」하고 말하는 총무의 표정이 각오를 단단히 하는 눈치다.

「우선 세면바닥을 수평으로 고치고, 그 위에 튼튼한 나무 늘판지로 보드를 소 한 마리가 편히 잘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만들어 세척 소독을 용이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축 수의 증감에 따라 가감하여 설치를 할 수 있게 하시오. 다음에는 소 사료통을 나무로 바꾸고 땅바닥에 닿지 않도록 하여 수시로 청결하게 세척 소독할 수 있도록 드레인구멍을 만들어 보시오. 그리고 사람도 햇빛을 못보면 황달이나 부황이 드는데 손들 비다민 군이 필요 없겠소? 동남쪽 지붕의 슬레이트를 걷어내고 유리나 투명 폴리글라스로 바꾸어 담요로 개폐기를 만들어 겨울이나 여름을 따뜻하고 시원하게 만들어 보시오. 특히 여름철에 모기가 덤비지 목하도록 축사주위를 청결하게 하고 방충망 시설과 '모기등'으로 간접조명을 하여 소가 편안히 잠을 잘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수의과 대학 교수같이 말하네요. 그런 돈이 어디서 나노.」

「그런 돈도 없으면 소를 내다팔아요. 그리고 다시는 키울생각도 말고!」하고 약간 언성이 높아진다. 먼산을 바라보 듯 딴전을 부리던 총무가 사람사는 집보다 낫네.

「왜, 안믿어 지오? 서구의 농부들이 몹시 춥거나, 모기 때문에 잠자리가 불편하면 축사에서 집승과 자는 농부가 얼마나 많은지 아시오? 옛날에 첫아이를 낳을 때 일부러 구유간에서 낳았겠어요? 그만큼 축사를 위생적으로 유지한다는 말이 아니오.」하고 총무를 보았다.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모습이 수긍이 가는 것 같다.

「서부영화에도 축사에서 함께 자는 카우보이를 봤지만, 그건 영화라고만 생각했지. 실제로는 더하는 것이네.」하며 다른 지적은 더 없느냐는 듯이 말을 기다린다.

「이제 축사가 갖추어야 할 이야기는 대충 했으나, 조사료와 농후사료의 선택과 관리 및 저장, 그리고 가축의 환경적응 운동 등 세부적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더 많은데…… .」하고 말하자 총무가 눈이 휘둥그래지며,

「아재, 그 이야기는 진짜 다음에 꼭 해주소. 노트에 좀 써나야 되겠소. 다음에 한번 더 놀러 와 주시오. 맛있는 동동주 받아 놓고 아재가 좋아하는 더덕, 산나물된장묻침도 많이 만들어 놓고, 메밀 국수도 준비 해 둘께요.」

「그럼 내가 다음에 이야기 할 걸 모두 프린트로 요약해서 가지고 오면 되겠네. 음식이나 준비해 놓고 나를 미리 불러요. 할 일 없는 사람이 항상 바쁜 나그네란 말이오.」하고 진주로 돌아왔다. 차를 몰고 오면서 내가만든 곡조에 맞춰 주문을 소리내어 부르니 더 멋지다. 한울님께서 주신 지혜가 아버지의 정다운 이야기로 전해진다는 것을 권능으로 깨닫는다.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

잠결에 전화벨 소리를 듣고 일어 났다. 장거리연행을 마친 뒤라 피곤했는지 초저녁에 깊은 잠이 들었다. 낮에 조금만 신나게 활동을 하거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면 저녁에 일찍 잠이 들고, 쓸에없는 고민을 하면 한밤을 지새우는 나이라고 하는 말이 옳은 것 같다. 「여보세요.」하고 컬컬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시간이 저녁 9시가 다된 시간이었다. 7시 뉴스를 듣다가 깜박 잠이든 것이 두시간을 잔 것이다.

「여보세요? 이진원씨 댁입니까?」하고 말하는 소리가 총무의 목소리 같은데, 남의집에 전화를 처음 거는 사람처럼 너무 조심스럽다.

「누구십니까? 맞는데요.」

「아재요, 나요 양보 총뭅니다. 말소리가 영 딴사람 같아서요.」

「자다가 깨어 목에 가래가 붙어서 그래.」

「주무시는줄 알았으면 내일 아침에 전화 해도 되는디…….」

「모래쯤 놀러 오실랍니까? 축사 고친 것도 보고. 산채나물과 메밀국수, 동동주도 준비 해 놨어요! 아재 줄 술 맛좀보다 나 술 배우것소.」하고 웃는다. 총무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알레르기가 있어 한 모금만 마시면 온몸에 두드러기가 난다. 종엽 큰 조카집 막내아들 결혼 때 만난 것이 벌써 해를 넘겼다. 나는 꽤 오래된 것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술맛은 안 변하는 것이니까 손가락 넣어 찍어 먹지 말어!」

하고 놀러가겠다고 확답을 했다.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어물어물 할 것이 아니고 약속을 지킬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이 되었는데도 아직은 따듯한 이불 속이 좋았다. 두서너번의 큰 하품을 턱이 아프도록 한후에, 눈물을 닦고 이불속에서 빠저나와 책상 머리에 앉아 컴퓨터를 켰다. 또 하품이 쉴새없이 나온다. 책상머리에 걸린 부모님의 흑백 회갑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아버지께서 해 주신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하며, 서구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옛 선인들의 자연친화적 농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리나라 농부들이 모르는 것은 잘못된 전통보존의식의 부재와 임기응변의 탐욕 때문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옳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三敬農法」이란 제목을 써놓고, 조사료와 농후사료의 생산, 저장 등의 위생적 관리부터 철저한 자연 순환법칙을 적용하는 요령과 사육자의 마음가짐과 생활방식과 사고방식까지 세부사항을 쓰기 시작했다. 글귀 마다 삼경이란 정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가축이든 농작물이든 정상적으로 자라지 못할 뿐 아니라, 인간에게 안갚는 농작물을 얻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산나물에 참기름치듯 묻혀 넣었다.

부친은 가축이나 농작물이 자기들을 돌보아주는 인간의 정성에 비례하여 자라나고 안갚음도 이에 비례한다고 하였다. 싫어하며 학대하거나 귀찮아 할 때 받는 농작물도 인간을 미워하게되고 인간에게 해로운 분비물을 저장하여 학대에 저항하려는 면역을 가지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죽하면 동식물이 주인의 즐거운 노래소리를 들으면 더 잘자란다고 하지 않는가. 사람이 서로 믿음으로 사랑하고 공경하는 마음을 이러한 가축이나 농작물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베풀어야 하는 것은 하늘이 내려주신 만물의 권리(氣成理賦)라고 말씀하셨다. 이런것을「삼경농법」이라 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조사료를 욕심내어 값싼 볏짚을 아무리 많이 쌓아 두어도 제대로 된 소 한마리를 길러 내지 못한다고 하였다. 사료용 볏짚은 처음부터 벼농사를 제대로 짓는 농부의 볏짚이라야 건강한 소를 기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다면 볍씨 파종을 할 때(못자리를 앉힐 때)부터 제대로 정성을 드리는 농부의 볏짚을 예매계약을 해야하고, 영농비를 앞당겨 지원해주며 공동관리 감독에 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두레정신(품앗이)으로 정직한 농사를 하는 것은, 나의 농사가 나만을 위한 농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사명감을 서로 갖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가뭄이들어 원예작물이 시들어가는 어느날의 일이다. 한 여름 뙤약볕에서 시들어 가는 수박밭에 먼거리의 강물을 길어다 물을 주시면서도, 밭두렁위의 작물에 직접 물을 주지 않고 깊은 골에다 물이 흥건히 고이도록 부어 주셨다. 새벽부터 종일토록 물을 길러다 주시면서도 주는 곳에만 반복하시는 아버지에게 왜 다른 곳에는 주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다.

「아부지, 아부지는 딴 사람들이 물을 주는 거하고 다리게 합니꺼? 다른 사람들은 수박두덕에 물을 조금씩 하루에 전부다 주는데, 아부지는 몇군데 고랑에다 물을 다 붓십니꺼.」하고 이상하다고 물었다.

「남이 다 한다고 나쁜 일도 따라하겠느냐.」하시며 웃는다. 이마에 흐르는 땀을 목수건으로 닦으시며 원두막 그늘에 앉으면서 나를 옆에 불러 앉히신다.

「구용아, 니가 목이말라 못견딜 때, 물 한 모금만 받아 먹으면 갈증이 심해져서 견딜수가 없게되니 얼마나 괴롭겠느냐. 한 모금의 물보다 웅덩이나 깊은 도랑에 몸을 담구면 모든 갈증이 없어지고 상쾌해 진다는 것을 아느냐?」

「예―. 625때 형님하고 내가 목이 말라 물고랑 속에 주저 앉아서 갈증을 풀었어요. 아부지가 목이 마르거던 더러운 물을 먹지 말고 몸을 담구라고 해서요.」

「거 봐라, 사람이나 수박이나 짐승도 모두가 같은 것이다. 밭이나 땅도 사람의 몸 같이 더위에 잘 견디는 곳이 있고, 더위에 견디지 못하는 곳이 있느니라. 사람 몸도 피가 돌면서 수분을 많이 보내주는 곳이 있고 적게 보내주는 것 처럼, 땅에도 수분이 많은 곳이 있고 수분이 적은 곳이 있단다. 수분이 적은 곳은 가뭄때 작물이 힘들고, 장마때는 작물이 더 잘된단다. 그래서 농작물을 건강하게 재배하려면 땅의 성질을 내몸같이 잘 돌볼 줄 알아야 한단다.」

「그럼 아부지가 짜꾸 물을 주는 곳은 수분이 없는 땅입니까.」

「그렇다. 아버지가 쉴 동안에, 네가 수박 밭을 맨발로 한 바퀴 죽― 둘러 보면서 수박나무잎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 잘 보고 오너라.」

「예―」

밭고랑의 길이가 100m를 넘는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금방이라도 연약한 수박묘목은 모두 말라죽어 버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발바닥에 느끼는 감촉이 이상했다.밭고랑이 따뜻하고 폭신한 이불같이 부드러웠다. 어떤 곳은 발바닥이 뜨거운 곳이 있고, 어떤 곳은 따뜻하고, 또 시원한 곳도 있었다. 발바닥이 시원하거나 따뜻한 곳에 있는 수박잎은 토실토실하고 윤기가 나는 듯 건강해 보였고, 뜨거운 곳에는 하얀 털이 뽀송하게 나있는 잎에는 윤기가 없어 보였다. 넓은 수박 밭이 모두 같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 았다. 온 밭을 한번 둘로보고 아버지 곁에와서 벗어둔 운동화를 신었다.아버지가 웃는 낯으로 처다보신다.

「아부지 말씀이 맞네요. 밭이 뜨거운 데는 수박이 시들고, 찹은데는 안 시들었어요.」하고 아버지의 말씀이 맞다고 웃었다.

「한 밭이라도 물이나 수분을 받아들이는 곳이 있고, 물을 지표면으로 품어 내는 곳이 있느니라. 사람이 먹고 배설하여 신진대사를 하듯이 땅 자체도 동식물과 같이 신진대사를 하는 것을 이제야 알겠느냐?」

「예. 그러면 이웃 사람들이 무조건 똑 같이 골골루 물을 주는 것은 잘못된 것이 겠네요?」

「너도 먹기 싫은 물을 억지로 억지로 먹으라고 하면 좋더냐? 반대로 목이 타서 견딜 수 없는 사람에게 한방울의 물을 주면 어떻겠느냐? 갈증을 충분히 풀어주어야 모두가 건강하고 고르게 자랄 것 아니냐!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가장 옳다고 여기는 마음 때문에 겸손함이 없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거란다. 구용이는 남의 말을 귀담아 듣고 잘 새겨서 나의 지식으로 삼고, 내가 생각한 말은 몇 번 더 생각한 후에 남에게 말을 해야 실 수가 없는 것이니라.」

나는 아버지의 긴 말씀이 다 끝나기를 기다려「예―」하고 길고 큰소리로 대답 하면서 둑을 넘어 도망치 듯 강쪽으로 달려나갔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시고 빙그레 웃으신다. 아버지의 흰 얼굴이 태양에 익은 듯 더 붉게 보였다. 강 언덕에 옷을 훌훌 벗어놓고 강물에 침벙 뛰어 들었다. 잔잔히 흐르는 얕으막한 강물도 따듯하게 느껴졌다. 하얀 강모래바닥에 몽돌자갈처럼 밟히는 검붉은 갱조개 한개가 나의 주먹에 가득찬다. 아버지가 장군을 지고 강으로 올때까지 자멱질을 하며 잡은 갱조개가 밀짚모자에 가득하였다.

「많이 잡았구나. 큰 놈만 가지고 가고 작은 놈은 그대로 놔 주어라. 오늘 저녁에 갱조개국으로 밥을 먹겠구나.」

아버지는 갱조개잡이 갈퀴를 만드실 때도 남들보다 두 배 넓게 만드셨다. 그래서 항상 큰 놈만 잡아오셨다. 벼를 이앙하실 때의 못줄도 남들보다 1.5배 이상으로 넓게 하셨고, 수박도 한평에 한거루만 남도록 가꾸고 한 나무에 수박도 세 개 이상 열지 않게 하였다. 그래선지 수박을 수확할 때는 어떤 것이 크고 작은 것인지 구별을 할 수 없을 정도였고, 그 넓은 밭에 수박이 몇 개가 열려있는지도 분명하게 알고 계셨다. 형님과 내가 함부로 아버지 몰래 수박서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하며, 도둑을 맞을 경우 몇 개를 훔쳐갔다는 것도, 심지어 누가 훔쳐 갔을 것이란 것도 예견하여 사람을 보내어 붙들어 오기도 하셨다. 이런일이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아버지를 아는 이웃은 작난을 하지 않았고, 타지의 도둑도 손을 잘 대지 않았다.

솔직하게 말해서, 아버지는 지금의 이 영농인들 처럼, 호박씨 까서 한입에 털어먹고, 항상 배고픈 사람처럼 탐욕꽁무늬를 붙들고, 게으른 한풀이로 날씨탓, 무능한 변명으로 영농제도탓, 편안하게 공먹는 농사를 원하며 정치행정지원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일년도 못해먹는 하루살이 비닐하우스는 절대 짖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유를 살펴 보면, 지금의 농군들이 과학문명의 이기를 이용하여 편안한 대농의 수익만 생각 하였지, 자연에 되돌려주고 얻어야하는 공동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이기심이 문제인 것이다.

A4용지 두 장에 간단하게 요약한 매뉴얼을 프린트로 출력하여 호주머니에 접어넣고 양보 총무집으로 갔다. 축사에서 소형크레인덤퍼로 소배설물을 치우고 있던 충무가 일을 멈추고 맞아준다. 나는 하던 일을 다 마치고 내려오라고 말하고 집으로 들어 갔다. 일을 다마치고 들어서며 의기 양양하게 들어서는 총무의 얼굴이 한결 밝아 보였다.

「일찍이 오셨네요? 점심때나 되면 올줄 알았는디.」

「더 일찍오려다가 늦었구마. 나도 늦잠자는 버릇을 못고쳐 딱하지요. 아버지는 언제나 4시에 일어나셔서 한 시간을 명상하신 후에 들에 나가셨다가, 아침 식전에 반나절 일을 마치고 돌아 오시곤 하셨지요. 그렇다고 돈을 탐하는 것은 더욱 아니신 것 같았는데…….」

「요즘은 이윤이 남지 않는 농사는 생각할 수 없어요. 농군들의 일삯이 옛날 기술자나 같아서야 원. 그러니 조금이라도 인건비를 줄이려고 안달을 하는기 아닌기요.」

하고 현 상황을 노동의 량과 수확체감을 대비하는 듯한 말을 한다. 그말이 틀리지는 않다. 그러나 그 노동이 만들어낸 가치의 진의를 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똑 같은 노동력을 투여 하여 그 가치가 연속적으로 재생되어 되돌아 오는 것과 일회성으로 단편화 된 것이라면 어느쪽이 가치가 있는 노동인가를 생각하는 농민들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돈들여 농사해서 얼마나 남는지 수지계산을 하면 걱정뿐인데, 다른 것 생각할기 어디었는기요?」

「나를 오라고 한 것도 생각할게 있어서가 아닌가.」

「그거야 그렇지만, 아재같은 말을 듣다가 망한 놈이 많아요.」

「망한 사람은 벼가 빨리 자라라고 모를 뽑아올리는 사람이나 같아. 바늘 허리 매어 쓴다든가? 농사란 기다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보살피는 신과 소통하는 삶이지,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오.」

「중이나 신부가 하는 소리는 그만하고, 고친 축사나 한번 두러봐 주소. 2백50만원이나 들었어요.」

「소 한 마리 팔아 수십마리 소값을 올리면 되었지 무엇을 더 바래요?」

「참, 아재는 남의 일이니까 쉽게 말하지만, 빚진 우리는 손발이 다 저려요.」

「그렇게 자신을 못믿고 어떻게 농사를 짓소.」

「나 자신을 믿는다고 누가 돈을 갖다 줍니까?」

「참 딱하요. 돈은 자기가 벌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 얻어지는 것이지, 걱정하면 올 돈도 도망 간다네.」

「아재 말대로 된다면야, 그것 못할 사람 어디있소.」

「이때까지 못하지 않았소. 오늘부터는 깨끗한 팬널보드위에서 깨끗하고 위생적인 나무사료통에 선별된 고급 조사료를 먹이고, 채광을 받아 건강한 모습을 보이는 깨끗한 소와 예전의 침침한 어둠속에서 똥 오줌이 범벅이 된 더러운 소가 시멘트 바닥의 두엄을 먹던 소로 보겠소?. 이것만으로도 총무는 신용을 얻게되고, 소들로 부터도 안갚음을 받게 될 것이요.」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소만.」

「옳고 바른말을 믿는 것도, 돈을 버는 일입니다. 총무도 어릴때 나와같이 소학이나 명심보감을 읽었지 않았소.」

「그때야 어른들이 시키니까 할 수 없이 읽었지만 기억이 나야재.」

「<공무해서 남 주는가>란 말을 기억하고 있는 나하고, 기억하지 못하는 차이가 지금 우리 두 사람의 생각차요.」

「아재는 대학을 몇 개나 나왔고, 나는 고등학교밖에 안 나왔으니 그렇지.」

「지금 어른들의 지혜를 말하고 있오. 학력이 무슨 대수요. 어른들은 한 분도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소. 소학교도 못다녔고, 남의 이야기를 듣고 지혜를 깨달은 것 뿐이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생각을 합하여 가장 좋은 이치를 구하는 것이오.」

총무가 개축한 축사가 밝아 보였다. 소가 먹을 여물(사료)통도 깨끗하게 소나무로 길게 짜서 중간중간 바라켓을 만들어 청소를 구분지어 할 수 있게 만들어 땅바닥에서 띄웠고, 천장을 열어 투명 폴리그라스로 채광을 하였다. 그리고 전동구동장치로 밤에는 두터운 담요로 지붕을 덮도록 잘 만들어 두었다. 축사바닥을 나무판자로 조립한 팬넬을 정수평으로 깔아놓고 께끗한 두엄으로 소들이 편히 쉴수 있는 공간도 확보하여 두었다. 시간을 맞추어 배설하는 장소의 바닥은 예전 그대로 세면트로 되어 있고 경사진 채로 두어 청소하는데 편리하다며 고치지 않았다. 나는 이것도 수평으로 해야 된다는 이유를 설명했다.

「사람이나 소도 대 소변을 볼때 상당한 힘을 씁니다. 변기나 땅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으면 힘을 쓸수 없고, 안정감을 얻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으니 바닥을 수평으로 고치시요. 다 고쳐 놓고 한 가지를 빼는 것은 무슨 심뽀요? 돈을 아낄려면 한꺼번에 완벽하게 해야지, 중벌로 다시하면 돈이 더 들지 않소?」하고 퉁명스럽게 나무랐다.

「그기까지 생각을 않했네요.」하며 멋적게 웃는다.

「저기있는 잔챙이 밤은 무엇하려고 두었소?」

「소 사료에 넣어주면 잘먹어요.」

「잔챙이 밤이라도 벌레가 먹지 않은 싱싱한 밤은 사료로 주어도 좋지만, 사람이 먹지 못하는 벌레먹은 썩은 밤은 소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벌레먹고 썩은 밤은 거름자리에 버려요. 벌레가 먹은 것이라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밤은 겨울철 구제역방지를 위해 소죽을 끓여 먹일 때 함께 끓여서 먹여야 합니다. 밤도 병이든 것은 소에게도 해롭습니다.」

「앞으로 벌레먹은 밤을 생으로 먹이지 말아야 겠네요.」

「사람이 밤 벌레를 고기로 먹지 않듯이, 소도 같다고 여겨야 합니다. 소의 위는 새김질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세균이 가득한 육질이 소의 위안에서 새김질을 도우지 못하고 이상발효를 일으켜 광우병같은 무서운 병을 인간에게 전하게 됩니다.」

「소가 육식을 하면 광우병이 생긴다더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고 있는 농후 사료는 잘 모르겠으나,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육우를 빨리 키우기 위해 육류폐기물을 사료에 곡식보다 많이 함유한다는 말을 <성난카우보이>라는 자전 수필에서 읽었어요. 이런 것이 바로 광우병의 원천이라고 말할 수가 있지요. 누예는 뽑잎을 먹고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자라야 한다는 우리 속담이 순리를 따라야 서로 건강하게 제명대로 산다는 진리지요.」

「아재 말을 들으니, 옛날 할아버지가 환생한 것 같소.」하고 비시시 웃는다.

「같은게 아니라, 나와 총무가 이야기 하는 것은 나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총무의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환생하여 이야기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였고, 총무도 그렇게 생각한 것이 우연이라 여기지 마시오. 천도교경전에 성령출세라는 법설이 있는데,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동안 선인들의 성령을 우리의 마음에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죽고 난후에 우리의 성령이 아이들의 마음에 남아 그들이 생각하고 지혜를 구할 때 이러한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전해주는 성령이 되어 있게 마련이지요. '구하면 얻을 수 있다'는 성경의 의미도, '스스로 돕는자를 한울이 돕는다'는 서현의 말도 같은 것이고, '지성감천' 이라는 표현도 같은 의미를 말하는 것이지요.」하고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 놓았다. 총무는 정신나간사람처럼 듣고 있다가 깜짝 놀란 듯이 서두른다.

「어참, 점심시간이 넘었오. 막걸리가 식초가 되기전에 맛이나 보시오 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