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의 모습

 


이 진 원    

   


  철재를 만재한 우리화물선의 흘수선이 얕으막하게 착 갈아 앉았다. 갑판위에서 금방이라도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나지막하게 푸른 바다가 내 얼굴을 비칠 정도로 조용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오늘 따라 유달리 배가 길어 보인다. 210미터가 넘는 배가 허리를 쭉 펴고 푸른 잔디밭에 누운 거인처럼 길고 크게 보인다. 보통 때는 갑판위에 화물을 실어선지 선체가 짧게 보였던 것이다. 배 옆구리에 자를 대고 줄을 근 듯이 완벽한 <even keel>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내항을 출발하여 첫 번째 독일 쪽으로 가는 준비를 서두른다. 이번 뱃길은 북유럽과 지중해를 순회하는 행해가 될 것 같다. 독일 덴마크 스웨덴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알제리 이집트 수에즈운하를 거쳐 예멘으로 빠져나오게 되어있다. 모두들 지루하고 귀찮은 항해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멋지게 즐길 수 있는 여행처럼 느껴졌다. 언제 내가 이런 여행을 즐길 수 있겠는가.


  조용한 갑판위에 “올 스탠바이”란 방송이 연습처럼 두어 번 울린다. 아직 선교에는 “파일럿” 기가 결려있지 않았다. 아마 곧 도착한다는 전갈이 왔나보다. 나는 기관 조종실(Eng. Control Room)로 천천히 내려왔다. 한 시간 전부터 이미 출항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이다. 조정실에 기관부원 모두가 모여 있었고 내가 main engine 조종석에 앉자 각자 정 위치로 자리를 옮긴다. 기관장이 맨 뒤에 내려와 나의 곁으로 다가 서며 중얼 거리듯 말한다.

「<빠이라>가 금방 올랐어.」

갑자기 경음 벨이 울리며 「stand-by eng!」이란 신호가 내려왔다.

기관장이 나에게 묻는다.

「1기사, 준비는 다 되었지?」

「예」

「그럼 3기사, 받아줘!」

3기사는 <예>하고 engine telegraph 신호에 맞춰 핸들을 옮겨준다. 시끄럽게 딩동 대던 경음이 멎는다. 기관 조종실이 갑자기 조용해지고 순간 긴장이 감돈다.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런 신호가 오지 않는다. 한숨을 돌린 나는   

「기관장님, 이번에 갈아 넣은 1번 blower의 bearing은 제대로 되었는지 저속상태를 한번 점검해 보시지요.」

「자식들, 그렇게 혼이 났으니 제대로 돌아갈 거야!」

하며 기관장이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이번 항해 전의 Dry-Docking은 Lloyd선급의 정기검사였다. 로테르담 도크에서 제1번 super charger blower측의 bearing유격이 커선지 진동과 소음이 심해서 survey를 받기로 하였다. 그래서 검사를 받기 전의 상태를 정밀하게 계측하여 기록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소 측에서는 Docking Out 날자가 다 되어 가는데도 Gas-turbine을 Overhaul 할 생각을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나는 조선소 측 감독관에게 독려를 했는데도 갖잖다는 표정으로 못들은 척 거만을 부렸다. 이를 기관장에게 보고를 했더니, 맨 뒤에 survey계획이 잡혔다고 했다.


  선박검사종료일이 하루밖에 남지 않은 마지막 휴일이다. 조선소도 쉰다고 하여 선원들과 함께 암스테르담 관광여행을 갔다가 저녁 늦게 귀선했다. 다음날 일과가 시작되자마자 조선소 감독이 작업완료확인서를 들고 나를 찾아와 1등기관사 확인란에 서명을 하라고 거만하게 내민다. 기관장에게 갔더니, 귀찮게 1기사 확인을 먼저 받아오라고 해서 왔다고 했다. 나는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언제 어떻게 gas-turbine blower를 분해 조립했는지를 물었다. 어제 휴일 날 전문가를 초빙하여 특별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작업명세서를 보자고 하였더니 서명 후에 copy를 보내 주겠다는 것이다.

  Docking-Out날자가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survey는 했느냐고 물었더니 본선 측의 확인만 받으면 해주기로 했단다.


  말이 되지 않은 일이다. 화가 치밀었지만 꾹 참았다. 그리고 작업결과를 점검한 후에 서명하겠다고 하면서 작업팀을 현장에 작업팀을 대기시켜 달라고 하였다. 조선소 감독은 의외로 놀란 듯 오!? 하면서 '네까진 게 무얼 안다고 그래' 하는 투였다. 계란처럼 뽀 하얀 얼굴이 금방 시뻘겋게 되더니 기관장실로 뛰어 올라갔다.

 나는 작업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기관실로 내려왔다. blower를 개방하라는 나의 지시에 조선소 팀장은 감독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며 나의 말을 듣지 않는다. 실랑이를 하고 있는 중에 선장실로 올라오라는 전화가 왔다.


  선장과 기관장, 조선감독과 SURVEYER도 함께 있었다. 1항사에게 출항준비 지시를 하고 있던 선장이 나를 보고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기관장의 표정은 선장과의 갈등을 자네가 잘 처리하라는 것 같았다.

「1기사 여기 작업결과 데이터를 가져왔는데…」

선장이 나에게 copy를 내민다.

「데이터는 정상인데…」

기관장은 나의 결정을 따른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이 데이터를 눈으로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럴 시간이 없어서 그렇지…」

하고 선장은 웬만하면 그냥 봐 주자는 표정 같았다.

「turbine과 blower측 cover만 열고 계측하여 안전범위에만 들면 서명하겠습니다.」하였다.

「만약 안전범위에 들거나 데이터에 조금도 이상이 없으면 이로 인한 滯船料와 중복 작업수당은 본선에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하고 조선감독이 큰소리로 선장을 위협한다. 나도 이 말을 듣고 참을 수 없었다.

「중요작업은 담당자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 필수규정을 조선소 측이 어기지 않았는가!」

하고 나도 얼굴을 붉혔다. 분위기가 험악해 지자 선급검사관이 진화를 한다.

「일단 blower측의 카버만 열고 확인해 보자.」

하고 Surveyer가 결정을 내려준다.


  나는 조선소 감독과 기관실로 내려왔다. 조선소감독은 저네들끼리 수건거리며 작업을 지시한다. 나는 조기장과 함께 본선계측기로 전후를 이동하며 상하좌우를 정밀하고 신속하게 계측해 나갔다. 3기사는 옆에서 불러주는 치수를 꼼꼼히 기록을 해 간다. 조선소 감독과 팀장들은 수없이 혀를 내두르며 소곤거린다. 조선소 계측기로 다시 반복 계측하였다. 같은 수치로 계측되었으나 제출한 데이터의 범주를 훨씬 넘은 것이었다. 조선소 감독과 작업팀들은 일그러진 얼굴로 연상 혀를 내두르며 안절부절 했다. 부득이 turbine측도 열었다. 결과는 위험 수치다. 기관장과 Surveyer가 현장을 보았다. Surveyer는 1기사가 작업완료 확인 후에 다시 오겠다며 떠나 버렸다. 나는 완전 Overhaul을 지시하고 모든 Bearing을 정품으로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내일 출항계획은 물 건너갔다. 얼렁뚱땅 우리의 생명을 저당 잡아 노예선박처럼 농간을 부려보려던 조선소의 추악한 탐욕이 엄청난 체선료와 재작업비용을 책임지게된 것이다. 그로부터 정기 검사를 마치고 조선소를 나올 때는 사흘이 지난 후였다.

   

  갑자기 요란스럽게 telegraph 가 상하를 왔다 갔다 하더니 <Full Astern>신호에 멈춘다. 되게 성질이 급하기나 너무 자신감이 넘치는 <빠이라(도선사)>같다. 나는 좀 불안 하였다. 3기사가 다급하게 신호를 맞춘다. 나는 양쪽 귀를 사냥개처럼 쫑긋하게 세우고 오른 손으로 낮은 레벨에 핸들을 올린 채 부드럽게 스타팅 행들을 당겨 놓았다. 조용하고 부드럽게 엔진이 걸린다. 핸들을 자신 있게 밀어 올린다. 배가 마치 후진으로 접영을 하듯 온몸을 떨어 댄다. <스톱엔진>신호가 온다. 나는 핸들을 조용히 그리고 빠르게 내려 엔진을 세운다. 양 과급기의 blower가 급한 숨을 몰아쉬며 휘이- 하며 휘파람 소리를 낸다. 기관장이 나갔다 들어와 나의 곁에서 <잘 돌아가는데>한다.

  

 심한 진동이 한순간 사라지고 다시 정적이 감도는 기관실에 <slow ahead>telegraph 신호가 내려온다. 연이어 half, full 신호가 고정되고 육중하게 느껴지는 선체를 조심스럽게 떠밀고 가는 인력거 주인처럼 main engine이 묵직하게 돌아간다. 지난번에 작은 진동으로 힘들어 못 견디겠다고 투정을 부렸던 제1번 blower는 이제 가뿐한 듯 마라톤 선수처럼 조용하고 자신있게 돌아가고 있었다. 

「1기사, 이번 도크에서 자네를 요 주의인물 1호로 별명을 붙였다네.」

「뭔데요?」

「Korean small-fox 2nd! 라 하던만……」

「멍청이 같은 놈들」

「아니야, 벌써 일본회사에도 소문이 났대.」

「왜요?」

「사흘이나 체선을 한 이유가 자네 때문 아닌가.」

기관장은 그동안의 일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조선소에서 베어링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데다, 계측을 해보니 2/1000를 조금 넘는 안전 수치였기에 blower측을 청소만 하고 다시 조립했다는 거야. 그런데 그 분해조립으로 더 악화된 위험수치가 1기사에게 발각 된 게지.」

「죽일 놈들! 인권을 말하는 놈들이.」

「아마 일본 조선소에서도 자네가 나타나면 별로 좋아 하지 않을 거야.」

「뭘 그렇게 까지 하겠어요?」

「아니야, 민감한 문제야. 사실 선장들이나 회사의 경영영업부도 자네 같은 인간생명운운 하는 사람을 상당히 문제시 한다네.」


  나는 그러든 말든 무사히 살아서 돌아갈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었다. 한국의 편의치적선원은 <체홉 단편의 아뉴타>도 아니며 봉건제국시대의 노예선원도 아니다. 백인들이 합리성을 앞세운 비열한 인종차별적 횡포를 실감한다. 오히려 한국인 선장들이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 같아 더욱 슬프다. 마치 유대인을 가스실로 보냈던 유대인 신고자처럼 말이다.

  국제노동구기도 ITF도 내실을 따져보면 백인들의 기득권을 위한 차별적 근로조건을 강화하는 꼴이다. 동일근무와 동일조건의 근로에서 동일한 임금을 받는 것은 정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것은 우월성을 가진 백인을 위한 강제조건이 된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동일근로조건의 동일작업 일지라도 문화와 환경의 습성에 따라 작업능력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자결권으로 자유계약을 할 수 있게 포용하는 것이 건전한 노동계약이라는 주장이다.


  화물을 가득 실은 육중한 선체를 밀고 가는 엔진소리다. 가느다란 진동의 여운이 조종실에 잔잔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말썽이었던 제1번 과급기도 조용하게 돌아간다. 긴 기적소리가 연거푸 울린다. 내항을 벗어나는가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STOP ENG>telegraph 가 울렸다. 그리고 연달아 <FULL ASTERN>신호가 왔다. 즉시 텔레그래프 신호를 받은 후 급하게 주 기관을 정지시켰다. 두 과급기가 긴 휘파람 소리로 콱 막힌 숨을 몰아쉰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꽝! 하며 엄청남 충돌충격이 나를 의자와 함께 왼쪽 옆으로 넘어뜨린다. 후닥닥 일어나 계기판을 살핀다. 그런데도 main engine은 즉시 서지 않는다. 속도가 저속으로 줄어들자 곧이어 바로 후진 시동을 걸어버렸다. 엄청난 노킹의 폭음을 일으키며 후진 시동이 걸렸다. 진짜 위험한 운전이다. 엔진룸이 춤을 치듯 진동한다. 한 참 동안 기관실이 진동하더니 갑자기 진동이 멎는다. 엔진 스톱 지시가 왔다. main engine 크랭크나 shaft가 부러지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다. 이 바람에 갑자기 비상대기 2호발전기가 자동으로 기동되었다. 순간 전압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2기사, 발전기를 병열 해!」

「예!」
「난방! 기관실의 파이프라인을 살펴보시오!」

「3기사는 보일러와 냉동기를 살펴보고… 」

나는 정신없이 눈앞에 보이는 사람마다 두서없이 지시한다. 그런데도 control panel의 모든 계기는 정상이다. 갑판위에서 긴급방송이 울린다. <선박충돌! 본선이 충돌했습니다. 비상사태 준비!> 라는 다급한 방송이 들려왔다.

 기관장이 <1기사, 잘 지키고 있어! 내가 올라갔다 보고 올게.>하며 다급하게 올라간다. 나는 또 옆에 있는 <스토키>에게 모든 빌지 밸브와 밸러스트 밸브가 잠겨 있는지 다시 확인하라고 일렀다.


  각자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한 사람 두 사람 조정실로 모여든다. 모두 이상 없다고 보고를 한다. 갑판 위가 궁금하다. 그러나 기관장이 내려올 때까지 마음조리며 기다릴 수밖에 없다. 충돌을 했으면 배가 기울거나 이상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른 징조가 나타나지 않았다.

  기관장이 내려와서 배꼽을 잡을 정도로 웃는다. 부딪힌 배는 이스라엘선적의 <바바나 보트>라는 선명을 가진 바나나 운반 냉동선이다. 철재를 만선한 우리배가 육중한 무계로 이배의 왼편 앞쪽 선창을 푹 찔러 선수 갑판에 바나나를 가득 뒤집어쓰고 빠져나온 꼴이 마치 벼 가마니를 푹 찔러 쌀 등급 검사를 한 것 같단다. 선수에 바나나가 무진장 있는데 선급검사관의 확인전에는 절대 손대지 말라는 선장의 엄명이 있으니 함부로 손대지 말라는 지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관부원들은 아예 갑판위에 나갈 생각을 말라는 특별 지시다. 구경도 하지 말라고 했다.


  선교에서 fore peak 탱크의 청수를 퍼내라는 지시가 왔다. 선수가 찢어져 포 픽 밸라스트탱크에 물이차서 선수가 앞으로 기울었기 때문이다. 아까운 청수를 그대로 버려야 한다. 옮길 탱크가 모두 가득 찼기 때문이다. 청수를 버렸더니 다소 수평이 된 것 같다. 이제 사고원인을 알고 싶다. 그런데도 선장과 항해사들은 물론 갑판원들 까지도 일체 입을 봉하고 마치 적군의 스파이를 대하듯 생사를 같이하는 기관부 선원들마저 외면했다.

           

  우리 배도 도선사가 타고 밖으로 몰고 나가고, 저쪽배도 도선사가 배를 몰고 들어왔다. 그리고 입출항시의 내항에서 정해진 항로를 가야하고, port쪽의 항해등이 권리표시를 한다는 내항 항해 규칙이 있다. 그런데 얼빠진 두 도선사가 그 넓은 곳에서 서로 좌측 권리 항로를 선점 하려고 하다가 정면충돌을 했다는 해난조사관의 말을 들었다. 어느 한쪽이 권리를 가지면 한쪽은 의무선이 되기 마련이다. 안 부딪히고 안전항해를 하면 되는 것이지, 뭣 때문에 권리항해선을 선점하려고 미련한 오기를 부려 재난을 일으키는가. 아마도 국제해난심판소에서 쌍방과실로 판결이 날 것 같다는 후문이다.


  제1번 blower 사건으로 요 주의 인물이 된 나는 코 잔등이가 흉칙하게 찢어 없어지고 폭탄맞은 얼굴이 된 시체같은 배를 몰고 그 조선소로 조용히 되돌아 왔다.  keel line이 뒤틀리지 않을 정도의 일부 하역을 마치고 짐을 실은 채 Dry Dock로 들어 왔다. 선수를 완전 수리하는데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선원들은 돈이 떨어졌는지 가불을 해달라고 아우성이다. <Sanko Line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