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학 도 인
아버지와 나(2)


글/ 이진원

   

  늦은 가을이다. 숲속의 오솔길은 곱게 물든 형형색색의 낙엽들이 외로운 나그네 발길을 인도하듯 붉고 노란 점들을 띄엄띄엄 찍어놓고 줄지어 기다린다. 매년 시향제례 때면 아버지는 적량소재, 횡천남산애치고개, 고전계잿재, 북천황톳재, 전라도맷디재 등을 넘어 숲속 지름길로 선조님들의 묘소를 일일이 찾으셨다. 초등학교 입학 후부터 아버지를 따라 성묘를 자원한지가 3년째 되었을 때다. 나보다 네 살 위인 형님도 두 번째는 함께 성묘를 했다. 그 후 두 번 다시는 아버지를 따라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장자에게만 가문을 잇도록 조상님들의 영험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아버지께서도 삼형제의 막내이셨다. 부모님께서 그토록 바라셨던 것은 선조들의 묘소를 한 곳에 모시는 것이었고, 십 수대를 이어온 문중의 소망이기도 하였다. 내가 83년 진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이상하게 종중 일에 심취하게 되었고, 드디어 2004년 4월 18일, 10년 동안 나는 고집스럽도록 문중을 설득하여<제향귀진>을 준공하고 시향제례로 모시던 선조님들의 영령을 모두 이곳으로 합동봉안하게 되었다. 그때 32위의 선조님들의 묘소를 자동차로 확인방문을 하는데도 하루 반나절의 시간이 걸렸었다. 그것도 산청과 전라도는 제외했던 이토록 먼 거리를 아버지와 나는 이른 새벽(보통4시반)부터 저녁밥시간(보통저녁9시)에 성묘를 모두 마치고 돌아온 불가사의했던 일을 뒤 늦게 알게 되었다. 그때의 꿈같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쳤다.


  땅거미가 드리우는 숲속의 오솔길은 혼자 걷기가 무서웠다. 항상 여유로우셨던 아버지도 몇 번을 가셨던 길을 되돌아오시며 어린 나를 달래신다.
「다리 아프지. 좀 쉬어 갈거나?」
「아부지, 좀 더 천천히 가주이소 예?」
「구용아! 다리도 안 아프고 아버지와 같이 가는 방법이 있는데……」
「어찌로 하는데 예?」
「아무 생각 말고, 아버지 발자국만 따라 밟으면 되는데, 참 쉽재?」
「아부지가 천천히 가시면 십것는디…」
「오야, 천천히 가 주마. 그래도 딴 생각을 하거나 먼 산을 팔면 안 된다.」
「예.」
「너 두루마기를 벗거나 허리에 걷어 올려라.」
「추운데 예?」
「땀이 많이 날 텐디?」
「땀이 나면 벗지예…」
「그래라. 해가 지는 구나. 자, 마음 단단히 먹어라.」
하시며 아버지는 두루마기자락을 허리에 걷어 올리고 허리띠로 묶는다.
「니도 이렇게 해 보거라.」


  아버지 두루마기는 가벼운 무명이라 허리에 잘 달라붙으나, 나의 두루막은 세비루(써지)에 공단으로 안총을 넣은 겹두루마기라 무겁고 두꺼워 허리에서 자꾸 삐져내린다. 할 수 없이 그대로 걸어가기로 했다.
「자- 천천히 가마. 마음 단단히 먹어라.」힘주어 말하신다.
「좀 더 빨리 가도 됩니다.」하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오-냐, 구용이가 정신을 차렸구나.」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의 발걸음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따라 밟았다. 얼굴에 스치는 가을바람이 선풍기 바람처럼 느껴졌다. 얼마간 걸었는지 모른다. 양쪽 어깨의 땀이 빗물처럼 모여 등줄기를 타고 허리춤에 흘러 고인다. 이때 갑자기 나의 바로 곁에서 귀청을 울리는 큰 소리가 울렸다. <희한한 사람들을 다 보것네!>하는 것이었다. 나는 무의식중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는 환청이었다. 이상하다고 머뭇거리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발뒷축을 다시 보려고 했다. 어찌된 영문인지 눈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방금까지 나와 함께 걸어오셨던 아버지가 내 눈앞에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다리가 천근같이 무거웠고 발바닥이 너무 아파 한 발자국도 더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장승처럼 멍청히 섰다가 큰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현기증이 심하게 일어났다. 나무에 머리를 묻은 채 눈을 감아 버렸다. 깜박하는 순간에 잠이 들었나보다. 나의 어깨를 흔들며 일어나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눈을 떠보니 시골장정(큰머슴) 세 사람이 나뭇짐을 받쳐놓고 나를 무서운 살쾡이를 쳐다보듯 약간 거리를 두고 말을 건넨다.
「야, 꼬마야 일어나거라.」
「…」
「야, 니 세비루 비단두루마기 멋지네.」
「니 어디서 오노?」
「하동서요.」
「어디가노?」
「성묘요.」
「네 아버지는 어디 갔노?」
「…」

  이때였다. 갑자기 흰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번쩍하더니 바지작대기를 짚고 서있던 한 장정이 풀썩 주저앉고 나머지 두 장정도 '아이고' 하며 종아리를 움켜잡고 주저앉아 버린다.
「나 여기 있다. 이놈들!」
하시며 아버지는 어느새 한 머슴의 지팡이를 빼앗아 세 사람의 종아리를 후려치신 것이다. 나는 장정들이 주저앉는 것만 보았지, 맞는 것은 보지 못했다.
「이놈들, 할 일은 않고 행인을 희롱하는 너희들 버릇을 고쳐야겠다.」
조용하게 말씀하시며 빼앗은 지팡이를 칼처럼 들어 올리신다. 장정들은 살려 달라며 땅에 엎드려 손을 치켜든 채로 싹싹 빈다. 나는 땀에 젖은 아버지의 어깨를 보며 용서 해 주라고 말했다.
「아부지, 용서해 주이소. 나한테 해꼬지 않했심더.」
「이놈들, 다시는 행인을 희롱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예, 어르신.」
「예, 어르신.」
「네놈도!」
「예 어르신! 다시는…」

 세 장정은 한참 종아리를 주무르고 일어나더니, 각자의 나뭇짐을 짊어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나의 곁에 앉아 허리춤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담뱃불을 붙여 피시며, 곰방대를 문채 곁눈질로 빙그레 웃으셨다. 흰 얼굴에 긴 수염, 붉게 홍조를 띈 양 볼의 온화하신 아버지 얼굴은 마치 신선처럼 고와보였다.

 

  우리가 마을 어귀를 지날 때까지 장정들은 놀고 있었는지 아직도 산을 다 내려오지도 못했다. 그들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또 크게 들려 왔다. 그러나 나는 다시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참, 희한한 사람들 아이가!」
「그래 말이다. 사람들이 날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