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간
- 아버지와 나 3 -

 

  웅암 이 진 원    

 

 그토록 목말라 기다리던 비가 천둥과 함께 몰아쳤다. 기쁨과 희망이 뭉게구름처럼 부풀었다. 그러나 너무 크게 웃다가 심장이 멎은 꼴인가. 삽시간에 쏟아진 폭풍우가 스쳐간 마을 앞 야산에는 엄청난 사태가 나 버렸다. 화전민이 일구어 놓았던 경사진 밭이 흙 한 점없는 돌밭으로 황폐해져 버렸다. 부드러운 살갗이 갈갈이 찢기어 나가고 하얀 뼈마디가 틔어 나온 것처럼 넓게 비탈진 밭은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버지가 밭을 일구는 사람들에게 힘이 들더라도 땅 욕심을 내지 말고, 밭을 수평으로 만들어 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아버지의 충고를 비웃듯이 기어이 경사진 넓은 토지에 화전을 일구어 두어 해 밭농사를 지어 먹었던 것이다. 너무 넓은 지역에 사태가 나 버린 터라 복토는 엄두도 낼수가 없었다.
설사 임시로 덮어 본들 장마철의 폭우를 피할 수 없었던지 화전민은 재 개간을 포기하고 떠나 버렸다.

   추석성묘를 마치고 돌아오시던 아버지는 마을을 떠나는 그 사람들을 보시고
  「저들이 또 다른 산을 벌거숭이로 만들 것이다. 매사를 쉽게 얻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불쌍한 인생들이다!」
  「저 사람들이 왜 마을을 떠납니까?」
  「남의 산을 버려놓고 또 다른 기름진 야산을 찾아 가겠지.」
  「야산은 땅 주인이 있는데, 우째 자기 마음대로 개간을 하는 가요?」
  「응, 보통 무주공산을 개간하고 살아 가는 사람들이다.」
  「무주공산이 뭔데예?」
  「주인없는 땅(나라의 땅)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단다.」
  「저 밭도 주인없는 땅인가요?」
  「아니다.」
  「가끔 개인땅도 개간을 하는데, 땅 주인과 협약을 하지.」
  「어떤 협약을요?」
  「땅 세를 받기도 하고,  몇 년 후에 개간농지를 땅 주인에게 돌려주기도 하고….」
  「나라 땅은 어떻게 하는데요?」
  「나라 땅은 허가를 받아야하는데, 저 사람들은 땅만 기름지면 무작정 개간하는 바람에 말썽을 일으키는 일이 많단다.」
  「화전민은 산에 불을 질러 밭을 만든다고 하던데요?」
  「암, 그렇다. 그래서 제 멋대로 하는 사람을 화전민이라 한단다.」
  「이 산은 나라땅인가요?」
  「아니다, 우리 산이다.」
  「아버지는 어떤 협약을 했는데요?」
  「네 어머니가 그냥 농사를 지어 먹으라고 했단다.」
  「나와 상의를 했다면 개간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날 아버지는 사태가 나 버린 밭을 혼자 개간하기 시작하셨다. 나는 어청나게 넓어 보이는 땅을 아버지 혼자서 괭이하나로 어떻게 개간 하는지가 궁금 하였다. 학교를 마치면 조바심이 나서 아버지가 개간을 하시는 목골로 가보고 싶었다. 넓은 창의 밀짚모자를 쓰시고, 작달막하고 야무진 체구는 언제나 여유있는 모습이었고, 조금도 지치지 않고 믿음직 스러움이 신선처럼 느껴졌다.

  「아버지, 저도 도울까요?」
  「오냐, 땅위에 나딩구는 돌만 주어 제일 낮은 밭 가장자리로 옮거쌓아라. 장갑끼고, 삼태기에 담아 날라라!」
  「아버지, 이밭은 얼마나 넓어요?」
  「3단보가 좀 넘는다.」

   나는 단보가 얼마인지 몰라 멍청하게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나의 표정을 보시고는 1단보가 300평이니까 이 밭은 1000평이 족히 넘을 거라고 하셨다. 나의 눈에는 목장이라도 될 것 같이 무척 넓어 보였다. 이 넓은 비탈진 산을 한사람의 괭이로 수평으로 반듯한 밭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의문을 풀어 보고자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이곳으로 뛰어오곤 하였다.

   나는 신나는 강아지처럼 넓은 밭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큰 돌만 골라 무리하게 삼테기에 담았다.  그리고는 삼태기를 들지 못해 다시 돌을 덜어내기도 하였다. 끙끙그리며 밭가운데서 힘들게 나르는 나를 보시고 아버지는 웃으시며 '가까운 곳의 돌부터 천천히 날라라, 힘을 아껴쓰야지' 하신다. 나는 몇차례를 옮기지 못하고 숨을 할닥거리며 땅바닦에 주저앉아 버렸다. 아버지는 보란 듯이, 매사에 분수를 지켜 욕심을 내지 말고 무리하지 않는 것도 도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쉬는 듯 일 하는 듯 천천히 괭이질을 하여 땅바닥에서 나온 돌을 모아 삼태기에 담아 낮는 곳에 축대를 지으신다.  한뼘 두뼘 돌을 파 뒤집는 땅은 겨우 한고랑도 되지 못해 해가 산허리밑으로 숨어버린다. 어둑어둑 해지고 돌과 흙더미의 구별이 어렵게 되어서야 아버지는 손을 털고 두 삼태기를 포개서 괭이목에 걸고 오른쪽 어깨에 둘러 메신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의 뒤를 강아지처럼 종종걸음으로 따라왔다.

 「구용아! 내일도 오겠느냐?」
 「예.」
 「내일은 작은 구루마를 준비해야겠다.」
 「무슨 구루마요?」
 「돌 나르는 손구루마.」
 「라야까요?」
 「아이다, 리야까는 위험하고...」
 「……?」

  나는 다음날도 책가방을 청마루에 동댕이처 버리고 집을 뛰쳐 나왔다, 작은 누나가 뒤에서 크게 부른다. 못들은체하고 나는 목골로 뛰어갔다. 아버지는 벌써 두 이랑을 더 만들어 두셨다. 상당히 길어보인다. 그런데 바작대기로 받쳐세워둔 지개발밑에 삼태기와 작으마한 판자구루마가 놓여 있었다. 얼음지치기 할때 아버지가 만들어 준 앉은뱅이 썰매보다 좀더 큰 것같다. 그리고 썰매의 칼날 대신 옆으로 네 개의 통나무바퀴가 야무지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발통이 잘 돌아가도록 쇠기름이 듬뿍 멕여져 있었다.

 「아버지가 맨든깁니꺼?」
 「오냐, 오늘은 구루마로 먼곳있는 돌을 날라봐라.」
 「야, 멋지다.」

  나는 두 개의 삼태기에 돌을 가볍게채워 서로 입을 맛대어 구루마에 실은채 구루마를 끌어 보았다. 비스듬히 경사진 산이라 낮은 곳으로 끌고가는 것은 힘이 들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참 이상한 것을 발견하였다. 작은 통나무 바퀴라서그런지 끌어 당기지 않으면 저절로 굴러가지도 않았다. 마치 말 잘듣는 당나귀처럼 끌어당기면 굴러오는데 가만두면 절로 굴러내려가지 않았다. 참 신기하게 만들어 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돌을담은 삼태기도 옆이나 앞으로 미끄러지지 않게 얕으막하게 난간을 만들어 받혀두었기에 삼태기를 들어내고 싣기도 참 편리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구루마를 천천히 끌어 당기면 잘 굴러 오던 것이 빨리 달리려고 힘껏 끌어 당기면 소금가마니를 짋어진 당나귀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천천히 한 시진을 열심히 날랐다. 아버지가 헛 기침을 하시며 좀 쉬었다 하자고 말씀 하신다.

 「구용아, 좀쉬거라!」
 「예」
 「아버지, 구루마가 참 신기해요.」
 「그럴테지.」
 「어찌 맨든깁니꺼?」
 「나중에 알게 될끼다.」
 「그 발통으로 깔려있는 돌은 모두 옮길 수 있을끼다.」
 「무슨 말입니꺼?」
 「발통이 많이 달아지면 위험해진다. 그러니 조심해서 아껴써야 한다.」
 「예……」

   자갈밭 처럼 그토록 많이 깔려있던 돌들이 어느 새 휭하니 없어진 느낌이 들었다. 삼태기로 들어 날랐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구루마가 신기해서 일하는 재미가 더났다. 빨리 마칠 욕심으로 많은 돌을 실으면 바퀴가 아예 움직일 생각을 않고, 일부러 적게 실어보아도 구루마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참으로 이상한 당나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구루마를 당나귀로 이름을 지었다. 아버지는 허허 웃으시며 그 이름이 꼭 맡다고 하셨다.

  「이 구루마는 당나귀 같아요!」
  「당나귀 이름이 걸싸 허구나.」
  「내말을 조금도 듣지 않고 꼭 두삼태기 돌만 실어야 하거든요.」
  「그럴끼다. 그놈은 쉽게 들 수 있는 두 삼태기만 실어야 하거든…」

   이렇게 사나흘이 지났다. 일을 다 마치는 날 앞산 기슬에 땅그미가 들고 밭 언덕이 싸늘히 식어갈 즈음 나는 평평한 밭위에 아버지가 파헤쳐준 돌을 모두 아랫담으로 옮겼다. 작고 큰돌이 서로 엉켜 마치 성벽을 쌓은 것처럼 1.5m의 높이로 쌓아진 긴 축대가 멋지게 생겨났고, 밭 이랑보다 30cm 정도 더 높게 돌담이 쌓여져 멋진 경계울이 되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괴성을 지르며 놀라워 했다.

  「햐, 아 - 멋진 성벽이다! 운제 이렇게 됫씰꼬?」
  「니가 처음 나를 도와준다고 말했을 때 다 되었던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꺼?」
  「정직한 마음으로 말을 하면 그대로 되는 것이거든.」
  「아버지, 제가요…  처음에 돌을 주어 성벽같이 튼튼한 축대를 쌓아올려야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우째 알았십니꺼?!」
  「응, 내 마음이 니 마음이고, 니 마음이 내 마음아이가.」

   나는 아버지의 말씀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초능력을 가진 도사 같은 아버지로 믿고 있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아버지 앞에서는 아예 거짓부리를 할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모든 것을 보는 듯이, 다 알고 계신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 일을 자랑하듯 감탄하며 멍청히 서 있는 나를 보시는 아버지의 모습도 천진한 어린이 같았다. 그리고 부드럽게 말씀 하셨다.

  「우리 구용이도 도인이 다 되었구나!」
  「제가 우째 도인이 됩니까?」
  「사람은 일을 해야 살 수가 있단다. 그런데 일을 하는데 눈 같이 게으른 것이 없고, 손처럼 부지런 한 것이 또 없느니라. 이 게르른 눈이 손 같이 부지른 해 지면 도인이 된단다.」
  「눈이 어떻게 손처럼 부지런 해 지는데요?」
  「그렇지, 네가 바로 알려고 하는구나!」
  「……?」
  「눈이 손처럼 부지런해 지는 것은, 지금하는 일을 하면서 다음에 주을 돌이나,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미리 살펴 두는 것이란다, 사람이 살아가는 바른 길을 도라하고, 사람이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도인이라고 한단다.」
  「그러면 성인은 뭔데요?」
  「성인은 바로 이 도인이 한울님의 성품으로 남을 도와주는 일까지 하는 사람이지.」
  「그러면 네가지가 같으면 성인이 되고, 세가지가 같으면 도인이 되고, 두 가지가 같으면 정직하고 부지런한 사람이되고, 한 가지만 같으면 게을코 거짓말 쟁이가 되것네요?」
  「오냐, 오냐. 구용이가 비유를 잘 하는구나. 그렇지, 그렇지! 오늘 우리가 마친 일보다 더 귀한 것을 서로 배웠구나!」

    일을 마친 뒤라 아버지는 많은 도구를 질머지고 가시면서도 발걸음은 구름을 밟는둣 부드럽고 가벼워 보였다. 홍조 띈 얼굴로 나를 돌아보시는 아버님의 따듯한 표정이 사랑으로 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