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거지 정수

이진원     

 

  고향집 앞 한 길 건너 우시장이 있었다.  2일과 7일마다 5일장이 서면 항상 붐비는 동네였다.
  옛날에는 하동장이 영호남을 잇는 큰 장이라고 했다. 우시장 서편언덕에는 거대한 대궐같은 일본식 건물(담포집:일본인 담포의 집)이있고 그 건물 뒷산에는 수백년의 나이를 먹은 노송들이 정원수처럼 아름답게 가지를 우산처럼 펴 하늘을 덮어주었다. 여름이면 시원하게 겨울이면 따듯하고 아늑하게 감싸주는 동산이었다.

   장날이면 동네 아이들은 이곳에 모여 금잔디로 덮여진 깨끗한 묘벼랑 비탈에서 가마니를 잘라 잔디썰매를 타곤 했었다. 그때 마다 어디서 나타 났는지 잿가루와 때국이 묻은 너덜너덜한 검은 옷을 입은 거지가 나타나 하늘을 우러러 보곤 했었다. 그러나 그가 어디서 사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은 없었다. 아이들은 그를 미친사람이라고도 했고, 주문을 외는 도사라고도 했다. 아이들은 그의 이름을 정수라고 이름지었다.

   아이들은 시장거리를 걸어가는 정수를 따라다니며, 무슨 주문을 외는지 엿들어 보려고 가까이 다가가기도 했다. 아이들이 그를 귀찮게 해도 웃기만 하고 화를 내지 않으니까 화를 낼 때까지 놀려보자고 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친한 사이가 되어 아이들은 너나없이 '야, 정수야!'하며 친구처럼 대하고 양지쪽에 쉬고 있는 정수 곁에 둘러앉아 어울려 놀기도 하였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 정수를 만나면 '야, 정수야!' 하며 친구처럼 곁에 앉아 노는 아이도 있었다. 어떤 아이엄마는 그와 노는 것을 보고 병걸린다며 야단을 치며 끌고가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들이 지은 그의 이름을 불러도, 무엇을 물어도 대답하는 일이 없었다. 모두가 벙어리인줄 알았으나 거저 '밥좀 주이다'라는 한마디 말 때문에 벙어리는 분명 아니었다.

 거지 정수는 이집저집 다니면서 구걸하지 않았다. 마치 주인집을 정해 놓은 듯 한 집을 정하여 구걸을 하였다. 너무나 정확한 식사시간을 맞추어 우리집을 찾아 오기 때문에, 어머님은 누님들에게 정수 밥을 챙겨 두라고 이르시고 아침마다 정수 밥을 부뚜막에 정한수 처럼 숭늉과 함께 준비해 두기까지 하였다. 한집에 얼마동안만 폐를 끼치는 것처럼 하고 다른 집으로 옮겨 동냥을 하는 이상한 사람같았다. 동냥을 오지 않으면 섭섭한 마음이 들 정도로 그가 기다려 지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우시장 북 편 쪽에 이씨라는 금전대부업을 하는 부자가 오칸겹집의 한옥과 망루를 갖춘 사랑채를 갖추고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며 살았다. 그는 사냥과 승마도 즐기며 여행을 자주다니며 세상물정을 누구보다 꿰 뚫고 폭넓은 삶을 살았다. 그가 자랑하는 사냥개는 우리집 황소보다 값이 비싸다고 했다.

   어느날 정수가 이씨집을 찾아갖다가 그 사냥개에게 큰 봉변을 당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짖거나 불안하게 하지 않던 그 개가 유독 정수가 그집 문밖이나 심지어 우시장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어디서 나타났는지 덤벼들어 그를 못살게 하였다. 겨울이면 우시장 관리 사무소앞이 양지 바르고 오붓하여 정수는 땅바닦에 무슨 글을 쓰고 또지우고 하면서 망중한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러던 정수가 이제는 그 개로 인하여 쉽터를 잃게 되었다. 아이들도 정수와 어울려 놀던 장소를 잃게되어 이씨에게 개를 묶어 달라고 애걸도 하였으나 이씨는 들어주지 않았다. 자기 아들이 정수와 놀지 못하도록 개를 훈련시켜 정수가 이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만들어 버렸던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은 생각이 다른 아이들의 좋은 친구마져 빼앗아 버렸던 것이다.

  아이들은 정수가 옆에 앉아있어야 편안하고 든든하였다. 부처처럼 앉아 있는 정수의 주위에서 아이들은 먼지를 날리며 재미있게 놀았다. 어떤 아이는 대꾸도 하지 않는 인형 같은 그의 해맑은 눈을 처다보며 제 혼자 묻고 대답하며 놀기도 한다. 아이들은 정수의 지긋한 미소를 보면서 평온한 웃음을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이 해 진 줄도 모르고 놀고 있으면 정수가 살며시 일어나 어디로 사라진다. 아이들은 그제서야 제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던 정수는 그 후부터 우리동네에 나타 나지 않았다. 한동안 아이들은 정수가 앉아 쉬던 관리사무소 앞에 한사람도 나오지 않았다. 장판처럼 맨들맨들했던 땅바닦에 쇠똥풀이 군데군데 났다. 오랜만에 몇몇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정수가 보고 싶다며 그를 찾아 보자고 하였다. 바로 그때 정수가 나타났다. 하늘을 쳐다보며 지팡이로 글을 쓰며 무슨 주문을 외우며 나타났던 것이다. 옷은 옛날보다 덜 남루했고 머리카락은 더희어 있었다.

   아이들은 야, 정수다. 야, 정수야! 하며 불렀다. 그리고 그에게 우루루 달려갔다. 하얀 얼굴에 하얀 수염이 나있었다. 정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온화한 미소와 아무런 말이 없는 것은 변함이 없다. 아이들은 정수가 맞다고 했고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그런데 정수가 관리사무소앞에 앉아 쉬어도, 이씨집앞에서 무슨 말을 해도 무서운 사냥개는 나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씨집 사냥개는 이빨이 다빠져 쓸모가 없어 장국집으로 팔려갔다는 소문이 났다. 그래서 정수가 돌아 왔다고 하였다. 그런데 그사람은 정수가 아닌것 같기도 했다.

   6.25동란이 났다. 우리는 모두 피난을 갔고 이듬해 10월이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5일장은 다시 붐볐으나 옛날 처럼 크게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의 입에 거지정수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한 농부가 농우를 팔러 시장에 왔다가 우시장에서 이유없이 황소가 쓸어져 죽어간다.  농부는 애를 태우며 울고 있는데, 거지 정수가 황소앞에 나타나 무슨 주문을 외우며 코뚜레를 잡고 일어켜 세워 소를 살려 냈다.'는 이야기도 있었고, 어떤 농부는 소가 팔려야 부모님 약값을 장만 한다고 걱정하는 농부의 손에 글을 써주며 쇠뿔에 걸어두라고 허여 그랬더니 좋은 값으로 팔렸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정수가 거지가 되었다가 신선으로 되었다가 한다고 했다. 두사람의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집이 어딘지도 말이 어느지방의 말인지도 알수가 없다고 하기도 했다. 동란후 거지 정수는 우리동네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어느 소 거간꾼의 말에 남원에서 보았다고도하고, 거창에서 대전에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중학교 다닐때 까지 정수는 지킬과 하이드 같은 신선이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