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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골 용소(龍沼)의 전설 ―정언공 馨 아버지의 전설―
아버지는 혼자 이 대 장정의 성묘길을 인시(寅時)에 떠나시면 해시(亥時)전에 돌아오셨다. 가끔 산청을 둘러 진주를 거쳐 오실 때에는 산청이나 진주에서 하룻밤을 묵고, 횡천에서 하루를 더 머물러 군 관내를 돌아 오시기도 하셨다. 이웃 사람들은 물론 가족들도 이상할 정도로 아버지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 축지법을 하신다는 풍문이 나기도 했다. 나는 아버지의 축지법에 호기심이 생겨 성묘길을 따라 나섰다가, 발과 다리가 부어올라 걸을 수 없어 혼쭐이 난 일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나 때문에 횡천에서 하롯밤을 묵었고, 다음날 아침 첫차에 나를 태위 집으로 보내 면서 남은 성묘를 마치고 오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차부에 내려 아픈 발을 끌고 어정어정 집에 오니, 아버지는 먼저 집에와 계셨던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아버지를 따라 나설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가을이 되면 시골에서 놀러오라는 소식이 들려오고, 즐겁게 먹고 놀던 풍성한 곶감풍경이 눈에 아련거렸다. 아버지와 겸상을 하여 저녁을 먹던 어느날, 아버지는 이번 성묘는 횡천 말티고개와 적량 공월티만 다녀 오실거라고 하신다. 나는 아버지에게 버스를 타고 다녀 오시면 편하고 빠르실텐데 꼭 걸어시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그 느린 굼뱅이를 왜 타느냐, 시간만 탕진하지!>하고 일축하신다. 나는 언뜻 '아버지의 발자국만 따라 밟으면 쉽다'는 말이 떠오르며, 아버지가 횡천에서 버스보다 먼저 오신 일이 생각났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선조의 묘소를 한 곳에 모시는 것이 문중의 소망이라 하셨다. 나는 83년 하선하여, 진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이상하게 종중 일에 심취하게 되었고, 20년 동안 문중을 설득하고, 더러는 법정다툼을 하여 2004년 4월 18일 봉안당<제향귀진>을 준공하였다. 그리고 전라도, 산청, 하동군 관내에 산해 있던 선조의 영령을 모두 이것에 합동봉안하였다. 이장준비를 위해 문중어른들을 모시고 하동군 관내에 있는 32위의 묘소를 확인만 하는데도,자동차로도 하루 반나절이 넘어 걸렸다. 이 먼 길을 아버지와 나는 새벽(보통3시)부터 저녁시간(저녁9시)에 성묘를 마치고 돌아온 불가사의한 그때의 환상을 이렇게 회상해본다. * 숲속의 오솔길은 형형색색의 낙엽들이 나그네 발길을 인도하는 폭신한 양탄자 처럼 줄지어
깔려있다. 땅거미가 드리우자 혼자 걷기도 무서웠다. 아버지도 몇 번을 앞서 가셨던 길을 되돌아오시며
나에게 용기를 주신다. 아버지 두루마기는 가벼운 무명이라 허리에 잘 달라붙으나, 나의 두루막은 세비루에 공단 안총을 넣은 겹두루마기라
두꺼워 허리에서 자꾸 삐져내린다. 할 수 없이 그대로 걸어가기로 했다. 정신을 차려 아버지의 발자국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밟았다. 얼굴에 스치는 가을 바람이 선풍기처럼 느껴졌다. 얼마를 걸었는지 모른다. 양쪽 어깨의 땀이 빗물처럼 모여 등줄기를 타고 허리춤에 흘러 고인다. 이때 나의 귀청을 울리는 말 소리가 가깝게 들렸다. <희한한 사람을 다 보것네!>하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아무도 없는 환청이었다. 고개를 돌려 아버지의 발 뒷축을 다시 보았으나, 눈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와 함께 걸어 오셨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다리가 무거웠고 발바닥이 아파 한 발자국도 더 걸어 나갈 수가 없었다. 나는 기진맥진하여 그 자리에 장승처럼 멍청히 섰다가 큰 나무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현기증이 심하게
일어났다. 나무에 머리를 묻은 채 눈을 감아 버렸다. 깜박하는 순간에 잠이 들었나보다. 나의 어깨를 흔들며 일어나라고 하는 말이 들렸다. 눈을
떠보니 시골장정(큰머슴) 세 사람이 나뭇짐을 받쳐놓고 나를 무서운 살쾡이를 쳐다보듯 약간 거리를 두고 말을 건넨다. 이때였다. 갑자기 흰 바람이 소용돌이치듯 번쩍하더니 바지작대기를 짚고 서있던 한 장정이 풀썩 주저앉고 나머지 두 장정도
'아이고' 하며 종아리를 움켜잡고 주저앉아 버린다. 세 장정은 한참 종아리를 주무르고 일어나더니, 각 자의 나뭇짐을 짊어지고 산 아래로 내려갔다. 아버지는 나의 곁에 앉아 허리춤에서 곰방대를 꺼내어 담뱃불을 붙여 무시고 곁눈질로 빙그레 웃으셨다. 흰 얼굴에 긴 수염, 붉게 홍조를 띈 양 볼의 온화하신 아버지 얼굴은 마치 신선처럼 고와보였다. 우리가 마을 어귀를 지날 때까지 장정들은 놀고 있었는지 아직도 산을 다 내려오지도 못했다. 그들이 뒤에서 중얼거리는
말소리가 또 크게 들려 왔다. * 아버지는 짧은 시간동안은 나도 정신을 집중한다는 것을 아시고, 이번 길은 한 나절이면 구용이도 다녀올 수 있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다. 언제나 아버지의 말씀은 조금도 어긋남이 없었기에, 나는 은근히 자신감이 생겨났다. 어머니가 깊이잠든 나를 두어 번 깨우셨나 보다. 정신없이 옷을 입은 나의 등을 부드럽게 두드려 도시락 멜방을 양 어깨에 걸어 주신다. 소재를 넘어 적량 바윗고개를 넘어서자 여명의 황홀한 빛이 눈에 들어왔다. 우계리의 초가집에는 아직 밥짓는 연기가 나지 않았다. 공월티를 넘고 남산 고개를 넘어 횡천강의 징금다리를 건너 애치마을 선산 관리인 집에 도착한 시간도 이른 아침 이었다. 남산과 말티의 선산에 있는 여러곳을 성묘하고 횡천강을 따라 적량 동산리 용소 앞 정자나무 밑에 앉아 잠간 쉬게 되었다. 게으른 농부의 늦은 아침밥 시간이었다. 나는 시장끼를 느꼈다. 「구용이 배고프겠구나.」 나는 아버지의 소매자락을 잡은채 이야기를 들으며 따라오다 보니, 어느새 소재를 넘고 눈앞에 확트인 너뱅이들이 나타났다. 집에 들어서자 어머니는 점심 전에 오신다더니, 때를 맞추어 오셨다고 반기신다. 점심 상을 차리라고 누님에게 이르신다. 손발을 씻고 큰 방안으로 들어 오는데, 대청에 걸린 큰 괘종 시계가 둥 둥하며 12시를 친다. 조금 있으니 <오포>사이렌이 울려왔다. 진짜 한나절 안에 60리가 넘는 길을 다녀온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어떻게 갔다왔는지 알 수가 없다. * 잠시 후에 한 농부가 그 황소를 찾는다. 농부는 황소 발자국이 모래밭에 선명하게 찍혀 용소 안으로 들어간 흔적을 발견하고, 황소가 자살을 했다고 통곡을 한다. 나는 농부에게 일러주려고 했으나 다리가 펴지지 않았고, 말도 나오지 않았다. 두 손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기를 쓰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일어나거라!>하는 아버지의 말이 들렸다. 나는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온 몸이 땀에 훔뻑 젖어있었다. 아버지가 온화하게 웃고 계셨다. 「몹시 고단 했구나. 헛소리를 다하고. 낮잠이 길면 밤잠을 설친다.」하시며 헛소리를 듣고 나를 깨웠다고 하셨다. 구둘막에 깔려있던 녹색 군용담요가 내가 앉아 잠든 그대로 양 어깨부터 무릎팍까지, 술독을 싼 것처럼 덮여 있었다. 나는 다리를 펴고 손등을 주무리며, 이상한 꿈 이야기를 하려고 아버지를 쳐다보는데, 아버지는 피로를 풀려고 명상을 하고 있는데, 내가 꿈꾸는 형상이 그대로 보여서 나를 깨웠다는 것이다. 아버지는 곰방대를 재털이에 내려 놓으시고 멀찌기 앉아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를 바라보시며 훈장처럼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왕자의 난을 일으켜 태조와 형을 쫓아 낸 태종이 왕으로 등극한 때라고 말씀을 시작 하신다. 태종원년에 각 지방에서 이상한 재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상소가 되어 올라왔는데, 그 중에 적량 동산리의 재앙도 있었단다. 왕은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사간원으로 보직된 정언공<李 馨>의 고향이 하동이라는 것을 알고, 그를 남도순회사로 암행을 보내면서 적량 동산리 재앙을 처리하고 오라는 교지를 내렸다. 御使<李 馨>이 남원, 거창, 함양, 산청을 거쳐 하동으로 잠행하여 하마에서 역졸을 풀어 동산리의 재앙을 상세히 알아오게 하였다. 역졸들은 국난이 일어난 그 해부터 가을거지가 끝나면, 동산리에 있는 늙은 황소만 아무도 몰래 보 안으로 들어가 자실을 한다는 것이다. 며칠전에 늙은 황소가 또 보 안으로 들어갔는데, 동네 사람들은 이 곳이 덴골(깊은계곡=天谷 : 티엔 구우<한어병음>)로 용이 살며 재앙을 부르는 곳이라 하여 <덴골용소>라 부르면서, 아무도 소를 몰고 강가에서 풀을 뜯지 못하게 한다고 보고했다. 李御使는 지금까지 없어진 농우는 몇 마리나 되고, 얼마나 늙은 소가 죽는지 알아보라 하였다. 역졸들은 지금까지 도합 98마리가 없어졌는데, 모두 21살 이상 나이든 황소만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어사는 지금 동산리에 남아있는 소 중에서 제일 나이 많은 황소가 누구집에 있는지 알아오라고 다시 령을 내리고, 이어사는 역졸들 뒤를 따라 한 밤중을 틈타 <데골용소>에 직접 가 보았다. 정월 보름이 사흘이나 남았는데도 달은 제법 밝았다. 이어사가 용소가 바라 보이는 어귀에 지붕처럼 울창하게 가지가 퍼진 정자 나무밑으로 가서 달빛이 보여주는 곳은 빠짐없이 눈여겨 살펴보았다. 용소는 계곡이 깊고 달빛도 들지 않아 어두운데 긴 머리를 풀어 내린 것처럼 실버들이 주름처럼 용소를 가리고 있어 더 음산해 보였다. 두려움이 가슴을 옥죄어 숨소리까지 내는 것도 힘들었다. 숨을 죽이고 용소의 수면을 응시하며 자정을 넘겨 보기로 했다. 시간 경계를 넘을 때에 반드시 무슨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이어사는 아무래도 좀 높은 곳에 숨어서 살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정자나무 위에 올라가 달빛이 들지않는 울창한 가지 속에서 표범처럼 엎드려, 물수리처럼 용소를 내려다 보며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양 어깨의 혈이 막히며, 눈과 귀만 보고 들릴 뿐, 몸을 움직이거나 입은 열리지 않았다. 이대로 죽게되면 개죽음으로 불충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달빛이 이저러 지며, 조용했던 수면이 일렁이더니 시커먼 그림자가 뛰어 올라 큼직한 버들 가지를 꺽어 물고 물속으로 사라졌다. 악어가 황소다리를 물고 회오리를 맴돌아 살점을 떼어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잠잠해 진 수면위로 초립모를 쓴 작은 사람이 버들 지팡이를 들고 떠올라 거울 위를 걷는 것처럼 물위를 성컴성컴 걸어 나오는데도 수면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았다. 뭍으로 나오자 곧바로 정자나무을 향해서 걸어오며 지팡이를 흔들었다. 하얀 지팡이가 칼처럼 달빛에 번득이는 것 같았다. 이어사는 어차피 인간은 신을 거역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죽을 각오를 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초립모를 쓴 놈이 황소의 굴레를 자기에게 씌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초립모를 쓴 그는 정자나무 밑을 지나가려다가, 무엇을 느꼈는지 멈칫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나서, 정자나무를 천천히 한바퀴 돌아서 가만히 쪼그려 앉으며 버들지팡이를 세워잡고 정신을 집중하더니, 「상제가 보낸 이선비가 그대요?」하며 쪼그려 앉았던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정자나무에 등을 붙이고 일어 선다. 임전 태세를 취하는 모습이다. 그의 말 소리가 바람결에 멀리서 전해져오는 것 같으면서도 우렁찾다. 이어사는 자기를 두고 하는 말로 알았으나, 가타부타 대답을 할 수가 없으니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자 뜻밖에 이어사의 등 위에서 부드러운 말 소리가 울려 나왔다. 꿈깬 사람처럼 정신을 차린 이어사는 정자나무에서 삿분히 뛰어내렸다. 여명이 밝기 시작했다. 역졸들이 모여들기 전에 역관으로 돌아와 깊은 잠이 들었다. 역졸들이 늦잠을 자는 이어사를 처음 보고, 몸이 불편한지 걱정을 한다. 이어사는 정신을 차려 간밤의 이야기를 곰곰히 생각해 봤으나 꿈속처럼 분명한 말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한 역졸이 말하기를, 「그 소의 나이가 21살드는 날짜를 알 수 없었겠느냐?」하고 이어사가 물었다. 이어사는 정자나무에 들은 이야기 중에서 정월보름 酉時란 말이 기억났다. 이어사는 역졸 몇사람을 대동하고, 우계리를 방문하였다. 송구영신의 행운을 구하려는 동네사람들이 모여 이번 보름 달집은 <보름이>를 생각하여 공월티에 달집을 짓고 달맞이를 하자고 하는데, 뜻밖에 <보름이>주인 이씨가 <덴골 용소>의 모래 사장에 큰 달집을 짓고 달맞이를 할 때 <보름이>이가 어떻게 자살을 하는지 함께 막아보자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동네 사람들은 용소에 가는 것을 두려워 하여 달집 짓는 것조차 발뺌을 하는 것이었다. 이어사는 재앙을 막아보려는 이씨의 마음이 갸륵하여, 역졸들을 시켜 동네사람들을 설득하라고 충동질을 시켰다. 큰 달 집을 지어도 산불날 염려가 없으니, 힘을 합쳐 재앙을 물리칠 수 있도록 큰 달집을 짓는데 우리도 도와드릴 것이니 그렇게 하라고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이어사는 다음날 용소에 달집을 짓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우계리로 혼자 가보았다. 우계리 공월티 입구에 있는 정자나무 밑에서 한 선비가 쉬고 있었다. 이어사는 누굴 기다리는 것 같아 그 선비에게 묵례를 하고 넌저시 말을 걸어보았다. 이어사는 공월티를 바람같이 넘어가는 선비의 뒷모습을 멍청히 바라본다. 정신을 가다듬고 <보름이>를 확인하려고 이씨집으로 가보았다. 우리에 매어 있는 우람한 <보름이>의 양어깨와 등줄기에 호랑이 처럼 굵은 검은줄무늬가 새겨져 있고, 굵고 긴 뿔은 양옆으로 벌어졌다가 오른쪽 끝은 하늘로 솟아 있고, 왼쪽 끝은 땅으로 숙여있었다. 이어사는 천지각우는 신선이 기르는 소라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이어사는 용소의 이무기가 이 황소를 찾기위해 그 많은 황소를 제물로 바친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이어사는 아무도 없는 집에 고삐도 풀린채 <보름이>혼자 집을 지키고 있는 늠늠한 모습이 믿으직 스러웠다. 이어사가 황소 앞에서서 <내일 저녁에 달이 뜨면 네가 이 마을을 구해 주게나!> 하며 이마를 만지자 <보름이>도 눈을 감고 머리를 내어미는 것이었다. 이어사가 동네 문밖에 나오자 우렁찬 보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메아리쳤다. 그길로 용소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달집을 짓고 있는 역졸 몇 사람을 불러 무슨 엄밀한 지시를 내리고 이어사는 역관으로 돌아왔다. 내일이면 무소불위의 신과 한판의 결전을 한다. 어떻게 이길 것인지 생각을 해 보아도, 하늘의 도움 없이는 가당치 않을 것 같다. 드디어 정월 대보름날이 되었다. 이어사는 인종에 일어나 목욕 재개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꿇어 앉아, 상제의 감응을 기다렸다. 온 몸이 떨리며 바람소리에 전해오는 말이 있었다. '신선이나 사람이나 상제의 마음을 모셨으니, 정직한 마음을 지키는 자만 상제의 감응이 있느니라' 하는 것이었다. 이어사는 이씨가 마음을 바꾸어 동리 사람들을 용소에 달집을 짓게 한 것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이후의 속임 수는 상제가 용서하지 않을 것이며, 한울도 어명을 도울 것이란 믿음을 가졌다. 이어사는 아침부터 역졸들에게 각각의 임무를 세밀히 지시하고 모두 평복으로 가장하되 무기는 짧은 봉퇴와 포승줄을 잘 숨기도록 하였다. 어느새 <덴골용소>의 백사장에 땅그미가 지고 거대한 달집이 큰 산처럼 길고 큰 그림자가 용소를 덮고 있었다.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달맞이를 나온 모습은 장관이었다. 이어사도 평복을 하고 달집 앞에 있었다. 저녁 6시가 되자 동녘이 파란 하늘을 들고 일어서듯 둥근 달이 떠 오를 때에 이씨가 <보름이>를 타고 달집앞에 나타났다. 군중들이 보름이의 고삐를 쇠말뚝에 단단히 묶어 놓아야 한다며, 이씨에게 고삐를 내려 달라고 하자, 이씨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며 고삐를 동네사람들에게 내어 주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은 평소에 이씨가 소등을 타는 것을 극구 싫어 했다. 소는 말과 달라서 사람이 타면 중심이 등쪽으로 모여, 목심이 약해져서 싸움을 못하게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참 이상한 일도 다보네. 이 사람아, 소등에 타면 못써. 어서 내리게!」하고 마을촌장이 이씨를 나무란다. 「어명이다! 어서 불을 질러라!」하고 이어사가 큰 소리로 역졸에게 명령한다. 황소를 내려 물속으로 먼저 들어간 초립모를 쓴 이씨가 이어사의 거물에 커다란 물메기로 잡혀끌려 나왔다. <보름이>를 살린 이씨는 너무 기뻐하며 이어사와 역졸에게 감사를 올렸다. <보름이>를 살린 달맞이는 용소의 이무기를 화장하여 재앙을 없애는 축제가 되었다. * 상제가 사는 한울나라도 세상과 똑 같은 곳이며, 신선들도 세상과 같은 성과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다만 수명이 한정 되어 있는 세상과 영생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한울나라의 신선들은 영생 하기 때문에 상제를 거역하는 죄를 지으면 한울나라 밖으로 쫓겨나게 된다. 그 중에서 제일 좋은 곳이 한울나라와 꼭 닮은 세상이다. 상제를 거역한 신선이 세상을 원하면, 신선을 세상만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그 수명대로만 살게 하였으나, 이것마저 상제를 속이고 세상을 속여가며 숨어사는 신선을 <이무기>라고 부른다. 상제는 지상에 내려온 신선은 인간의 심판과 경계를 받도록 하여, 영생을 못하게 한 것인데, 인간이 이들과 결탁하여 상제를 속일 때 내려지는 무서운 벌을 재앙이라고 한다. 한울나라에 영특한 신선이 있었다. 그는 상제의 명을 받은 일이면 다른 신선들은 준비도 하기 전에 명받은 다음 날 마무리한 일을 상제께 알현했다. 상제는 탄복할 정도로 영특한 이 신선을 아껴 상제가 기거하는 동편에 있는 풍광이 좋은 개울과 깊은 늪이 둘러있는 작은 동산에 거처를 마련해 주며 개울가의 아름다운 능수버들처럼 정직하게 봄을 알리는 신선이 되라는 뜻으로 柳라는 성씨를 내려 주었다. 다른 신선들의 부러움과 시새움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이 류공은 남의 날자를 훔쳐 자기 수레에 실고가는 둔갑 술의 천재라는 풍문이 천궁에 나돌았다. 날자를 수례에 실은 모습은 車를 옆으로 눕힌 글자다. 다른 신선과 상제에게 날자를 속여 다른 신선들의 일을 곤혹스럽게 만든 죄를 지어 쫓겨날 뻔 했으나, 다시는 둔갑술을 쓰지 않는다고 맹세를 한 후 용서를 받은 신선이 바로 류씨라는 풍문이 나돌았다. 상제는 자기를 또 속일 수있는 둔갑술을 믿을 수 없어 그를 시험해 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상제가 두 내시를 류씨와 같은 쌍둥이로 둔갑시켜 한 사람을 류씨집으로 보내어 류씨를 데려 오게 하였다. 상제 앞에 나타난 세 사람의 류씨를 놓고 누가 진짜 인지를 골라보라고 하였다. 상제도 다른 신선들도 알아내지 못하자, 한 신선이 車공이 기르던 천지각우를 끌고 깊은 내를 건너게 하여 車씨를 알아내었다. 상제는 명을 거역한 차공의 그 영특함이 아까웠으나, 다른 신선들의 정직함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세상에 하강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쫓겨난 柳공에게 상제는 그 재주가 아까워 자네의 <천지각우>도 세상에 내려 보낼테니 사람을 해치지 않고 사람을 속여서 데려온다면, 천상에서 둔갑술을 못하는 족쇠를 받겠다는 조건으로 상천을 약속하고 그동안 머물게 한 곳이 동산리였다. 류공은 자기가 기른 황소 때문에 인간세상으로 귀양을 오게되자, 사람을 해치지 않고 99번을 속이되 마지막의 천지각우를 데리고 상천하려다 상제를 또 속여 영원히 인간 세상에 남게 된 것이라고 아버지는 말씀해 주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