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솔 예찬

                                                                                                    이 진 원  

  그토록 알고싶어 배웠고
  깨달음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마다

  언제나 되새겨 복습하였더니,
  헝컬어진 실타래 처럼

  서글펐던 몰지각이 올오리 풀려서

  바르게 하나 둘 매듭이 이어져서
  베틀이 가벼우니 얼마나 기쁠지고!

  동문수학 몽매한의 우정을 위해
  서로도와 먼길도 험한길도 잊고

  진리찾아 친구처럼 스승처럼 찾아오는

  따뜻한 인정과 애정의 만끽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는 즐거움이어, 행복함이어!

  바른꿈 실천을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 구하여 얻은 실력을 가진 인격자의

  능력을 남들이 몰라주어도 자랑함이 없었고

  그 능력에 비웃음을 주었어도

  마음 상하지 않고 더더욱 능력을 갈고 닦음을 지키는
  군자같은 어젓함은 <푸른솔의 예찬>이려니! 

방송대 이야기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사법고시합격자 750명중에 절반이 넘는 400여명이 방송대학교 재학생들이며 이들중에서도 더욱 축하받은 것은 95년 초등학교 졸업도 하기전에 검정고시로 최연소자로 본대학법학과에 입학하여 훌륭한 법관이 되겠다던 어린학생과 함께 최고령자로 입학했던 두학생이 무두 합격하였다는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란, 정의로운힘 제대로된힘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의 표현 입니다.
 모든 技,藝의 고단자가 기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기 위해서는 맑은정신과 튼튼한 체력과 건전한 심성을 갖추어야 하는 것 처럼 학문은 배우겠다는 의욕과 얻어진 진리를 반복된 학습생활에 이어짐만이 인격도야의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 입니다.    

 <푸른솔예찬>을 ‘논어의 배움’이라는 말을 빌어 서사한 것은 자명한 진실의 결과도 스스로 얻어려고 노력하거나 지키지 않으면 제대로된 배움의 성취나 가치의 획득은 불가하다는 것이며, 우리들의 진실된 삶과 행복마져도 유지할 수 없었던 잃어버린 시간속에서 잉태된 사유의 실증이 예찬된 ‘푸른솔’인지도 모른다고 역설적으로 변명해 보려는것 입니다.    

향우학원 이야기

  복잡한 시내뻐스 안에서 ‘선생님! 선생님예! 여기앉으이소!’ 왼쪽 귓머리에서 또릿하게 들리기에 돌아보았드니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며 한아이는 등에업고 하나는 손을 잡은채로 자리를 비우며 젊은 나더러 선생님이 앉으라고 하니 민망하기 그지 없었다. 고집을 부리는 제자를 가까스로 앉히고 옛날을 생각하며 어린애들처럼 부끄러움없이 환하게 서로 웃었다. 

  1962년 2월말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나는 반뼘의 농토도 없는 우리집 네식구의 호구지책으로 원하지도 않는 남의 일을 자진하여 도와주면서 그들이 베풀어주는 작은인정만으로 힘겨운 끼니를 때우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매일밤 내일의 일거리를 찾아다니면서 밤마다 만나는 많은 청소년들이 가난때문에 진학도 못하고 밤거리의 시장터나 극장가 혹은 야간열차나 버스정거장의 어둠의 원망소리에 뜻없이 묻어버리는 그들의 학창시절을 아까운 밤의 시간에라도 찾아주어야 한다고 웅변했었다.

   나의 설득을 익살스런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혁명군의 사명감이라며 어슬프게 인정하여 주었고, 상담에 응하여주신 은사님의 적극적인 편달로『하동향우학원』이 개강되어 졸업생은 모두 은사님의 고등학교에 입학되는 영광도 얻었고, 내가 바다로 떠난뒤에는 모교의 2부중학교로 편입 되었습니다.
  바로 그 뻐스안의 부끄럽고 따뜻했던 인사가 “‘향우학원졸업생 입니다.’선생님!”이었다.   

아내의 검정고시와 푸른솔 입학

  고도문명(高度文明)의 파멸위기(破滅危機)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재앙에서 비롯될 것 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현대지성인들의 바른생활자세와 노력은 문명의 이기를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능력배양에 있으며 아울러 이것은 공동의 필수의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인정하여야 한다.

  나는 이런 주장의 의무감에서 94년 방송대 전산과에 입학하여 4년간의 전과목을 수학하고 나름대로 필요했던 학리를 이해하게 되었고 학습에도 자신을 갖게되었다. 이후 당초의 목표였던 법학과에 다시 편입하여 현재 3학년에 재학하고 있다.

  이런 과정을 열심히 보살펴 주던 아내가 ‘대학에 함께 갔으면’ 하는 동경을 본 나는 곧바로 고입검정고시 문제집을 아내에게 선물해주며 ‘시작은 머뭇거림보다 언제나 빠른길’이라고 용기를 준것이 3개월후 검정고시에 합격하였고 그때 같이 합격한 장점순 학우의 우정있는 권고로 푸른솔중고교에 중도 편입학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아내의 지향처 발견

  아내는 작은 복지관을 만들어 자생력있게 항구적인 사회봉사를 할 수 있는 것이 그녀의 소박하고 청렴한 꿈이다. 이것이 가능한 시종(始終)의 완벽한 요건인 희생적 사명감과 만족감이 충만한 구성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이것이다.

  딸 수지가 의대를 졸업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약속과 법률을 제대로알고 남을 도우는 지식인이 되겠다는 나의 약속을 믿기때문이다. 이에 더하여 아내는 사회학을 전공하여 복지사회의 여성으로서 정통실력을 가지겠다는 자신감으로 푸른솔야학을 열심히 다니며 자정을 넘기면서 서투른 영어단어를 외우는 모습은 훌륭한 지향처를 향해가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꿈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 외형의 크고 작음이 진실가치의 척도가 아닐진대 나의 지향처를 닮은 아내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푸른솔의 늦깎끼 학생들이어, 위대한 추억은 위대한 결과를 낳았을 때 얻어지는 인동초의 정설과 같은 것입니다. 푸른솔의 고마운 선생님들을 언제어디서도 환한 웃음소리로 부를 수 있는 ‘내실적 성취가 있을때의 추억’은 진실로 숭고한 위대함 입니다.<己卯新正 熊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