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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진 원
<여·순 반란사건 때의 이야기>
할아버지께서는 왜정 이전부터 김(해태)밭을 경영하면서 돈을 벌어 해안 강변에 인접한 넓은 농지를 사들이고 인근의 농민에게는 후한 소작으로 농토를 맡기면서 겨울철 농한기에는 소작인들의 노동력과 넓은 소작농토를 이용하여 태양을 이용한 자연건조과정을 거치는 생산수단으로 활용하시면서 엄청난 해태(김)와 파래(속)등을 생산하셨는데, 전라도 광양 진상과 진월에서 생산되는 김과 파래도 하동노량 조합의 등록검인을 받아 수출도 하고 시장으로 유통되었다.
가시겠다 하였다.
여수와 순천에서 반란이 일러나 광양까지 왔다는 소문이 들리는데도 어머님이 우리를 데리고 기어이 다녀오시겠다고 우기시니, 화를 내실 줄 모르시던 아버지께서 흥분하신다.
“남자가 옹졸하게 여자보다 간이 작아서야…” “남들이 여장군이라 하니까…, 얼마나 간이 큰지 봅시다!”
아버지는 들에 가신다고 집을 나가시자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집을 나셨다.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데리고 하저구 돔태기 나루터를 건너서 진상으로 갔다. 진상에서는 반란군이 광양읍까지 점령하여 경상도로 곧 진격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여기저기서도 치안대원 이라며 대창을 들고 설치며 반란군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거나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사람이 가끔씩 보였다.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른척하고 지나가려니까 그 사람은 공씨를 보고 모두 따라 오라고 한다. 천연스럽게 갈아 앉은 목소리로 어머님이 보내주고 위엄을 보인다. “쓸데없이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귀찮게 하느냐.” 그 사람이 고개를 갸웃 그러며 어디서 본 듯 한 얼굴로 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한다. “대지주의 며느리가 맞지요!” “대지주고 소 지주고 그게 무슨 말인데 우리를 붙잡아!” 하시고 진짜 화가나신 듯 나무라신다. 그때야 공씨가 어머님을 말리시며 참으라고 눈짓을 하면서 조용히 그 사람 달랜다.
“아무리 닮은 사람이기로 병든 아이들을 치료하는 길인데 어서 보내주게…” 송씨는 어찌하던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진땀을 흘리신다. 남의 일처럼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슬슬 모여든다. 그 중에 붉은 완장을 한사람도 있고 머리띠를 한 사람도 있다. 주위에 사람이 모여드니 용기가 솟은 듯 그 청년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큰애를 여기 남겨두고 이 사람들을 데리고가서 조사를 해 보시오!” 어머님이 호랑이 같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일 듯이 덤비며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로 고함을 지르며 호통을 치신다.
“어 어 이 여자가 디 질려고 환장을 했나!” “그래 개만도 못한 놈아 나를 죽여 봐라!” 비교적 큰 체구의 어머님께서 흰 무명치마저고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마귀 할멈처럼 두 손을 갈고리같이 높이 쳐들고 덮치려 하자, 그 사람은 동무들! 이 여자를 죽이시오! 하며 뒤로 멀리 물러섰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더 화가 났던지 이번에는 대창을 앞으로 내밀고 야- 하면서 어머니를 향해 돌진하였다.
어머니가 큰 고함을 지르시더니 쿠당 탕 하고 검문소 책상머리에 넘어진 사람은 대창을 들고 덤볐던 놈이고, 오히려 어머니가 그 대창을 빼앗아 들고 그 머슴 같은 사람을 찔러 죽이려고 충혈 된 눈으로 살기가 등등하여 달려들고 있었다. 이를 본 공씨가 달려들어 어머니의 허리를 무작정 붙들고 아이들을 생각하여 제발 참으라고 말리시며 대창을 뺏으셨다. 잠깐 머문 순간 호루라기를 불며 철모에 붉은 띠를 둘러 계급을 알 수 없는 한 군인이 권총을 차고 짚 차에서 내리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대장동무! 이 여자는 대지주의 며느리가 확실합니다.”
어머님 대창 앞에서 손을 싹싹 빌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놈이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일어나며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인민재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군인은 잘 알았다는 듯이 말하면서 그 사람을 칭찬한다.
“어디 사는 사람들이오?!” 어머니가 군인을 보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하동에서 왔소” “어디로 가시오?” “아이들 피부병 때문에 곡성 가는 길이오.” “곡성으로 갈 수 없소! 위험하오!” 군인의 말이 부드러워지자, 그 머슴 같은 사람이 한번 더 대장에게 고한다. “대장동무! 저 여자는 대지줍니다!” “알겠소! 하동으로 진격중이니… 조사한 후 인민재판에 부치겠소!” “예…” “당신들은 이차를 타시오, 시간 없소!” 짚 차 뒤에 올랐다. 녹 쓸고 앉을깨도 없는 철판의자다. 짚 차가 진상을 빠져나오자, 운전병에게 ‘기름도 부족한데 저 굴에서 처리하고 올 테니 신작로 입구에 대기하라’ 명령한다.
“…” 그런데 나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짚 차를 앞에 보내고 철로가 없는 굴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짐하듯 당부한다. “이 굴을 따라 빨리 가시오,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란군 장교가 굴 밖으로 나가자 권총소리가 두어 번 울렸다. 한참 후 신작로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며 무등산 고개 길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재촉하며 조용하게 설명하듯 말씀하신다.
“어머니, 죽으면 어쩔 라고 그렇게 싸웁니까!”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 “죽기를 결심하면 살기가 쉽고, 살라고 기를 쓰면 죽는 길 뿐 이란다”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늘 상 말씀하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인 것 같다.
철교도 없이 다리 발만 높고 낮은 것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곳을 따라 뱃길이 열린 돔박곡 나루를 건너 철둑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똥 장군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만났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께 미안하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아이들 보는데서 여댁이 없이 운다고 나무라시며, 내 할 일을 임자가 하도록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위로를 하셨다. 훗날 공씨가 우리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안심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되돌아 가버린 이유를 말씀하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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