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모성

                                                                                                   이 진 원  

<여·순 반란사건 때의 이야기>

 

   할아버지께서는 왜정 이전부터 김(해태)밭을 경영하면서 돈을 벌어 해안 강변에 인접한 넓은 농지를 사들이고 인근의 농민에게는 후한 소작으로 농토를 맡기면서 겨울철 농한기에는 소작인들의 노동력과 넓은 소작농토를 이용하여 태양을 이용한 자연건조과정을 거치는 생산수단으로 활용하시면서 엄청난 해태(김)와 파래(속)등을 생산하셨는데, 전라도 광양 진상과 진월에서 생산되는 김과 파래도 하동노량 조합의 등록검인을 받아 수출도 하고 시장으로 유통되었다.
  
  해방이 되고 새 정부가 생겨나면서 토지개혁이 시작되어, 할아버지는 세 아들에게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셨는데 아버지가 막내인 셋째로 가장 어렸다. 그리고 현지에서 김 생산을 위해 사들인 넓은 농지는 할아버지를 도와 준 소작인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셨다. 공씨는 소작인들 중 가장 많은 토지를 물려받아 상당한 부자가 된 사람이었다.

  공씨는 추수를 마친 겨울이나, 설 추석, 기타 명절이 될 무렵이면 빠짐없이 밤,고구마,찹쌀, 수수 등의 농작물을 수레에 실어다 주셨고, 어린 나와 형님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참 귀여워 해주셨다. 나의 기억으로 6.25 사변이 일어날 때까지 집에 오셨는데 수복 후에 소식이 끊겼고, 그 자손들이 부산에서 큰 회사를 차려 잘 산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기뻐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1948년 어느 가을날 공씨 아저씨가 집에 오셔서 가려워 잠을 못 자고 피가 나도록 긁어 온 다리가 벌겋게 부어있는 형님과 나의 피부병을 보시고 안타까워하시며, 피부병에 좋은 물과 약이 곡성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자기도 아이들을 데리고 가 본 일이 있는데, 참 신통하게 잘 나았다고 하시며 우리를 데리고 그곳에

가시겠다 하였다.

  아마 요즈음 어린이들의 알레르기아토피성 피부질환이라 생각한다. 어머님이 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공씨와 함께 곡성을 다녀오시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권하시자, 요즘 전라도에 시국이 어수선하니 그 쪽으로는 여행을 가서는 안 된다고 하시고, 어머님은 괜찮다고 하며 서로 다투시자, 민망한 공씨는 결정이 되시거든 가시는 길에 집에
들러주시면 함께 가겠다고 하고 돌아가셨다.

 

  여수와 순천에서 반란이 일러나 광양까지 왔다는 소문이 들리는데도 어머님이 우리를 데리고 기어이 다녀오시겠다고 우기시니, 화를 내실 줄 모르시던 아버지께서 흥분하신다.


“사람 다치고 병 나은들 무슨 소용이오!”

“남자가 옹졸하게 여자보다 간이 작아서야…”

“남들이 여장군이라 하니까…, 얼마나 간이 큰지 봅시다!”

아버지는 들에 가신다고 집을 나가시자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우격다짐으로 데리고 집을 나셨다.
 

   어머님은 형님과 나를 데리고 하저구 돔태기 나루터를 건너서 진상으로 갔다. 진상에서는 반란군이 광양읍까지 점령하여 경상도로 곧 진격한다는 소식이 들리고 여기저기서도 치안대원 이라며 대창을 들고 설치며 반란군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팔에 붉은 완장을 두르거나 머리띠를 두르고 있는 사람이 가끔씩 보였다.

 
   멀뚱히 구경하고 따라오지 않는 나를 보고 되돌아온 어머니와 형님을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머리와 등을 치며 빨리 가자고 다잡는다. 부지런히 뒤도 보지 않고 망덕리 까지 단순에 도착하였다. 반갑게 맞아주는 공씨는 우리가 요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며 오실 때 사정을 물어본다. 그리고 나서 갈 수 있는데 까지 조심하여 광양만 지나면 오히려 안전하다고 하시며 함께 다시 길을 나섰다. 진상면에 도착하자 벌써 반란군 선발대가 도착하여 붉은 천을 팔에 두르거나 머리띠를 하고 한복을 입은 청년들과 어울려 모든 길목마다 책상을 하나씩 놓아 길을 막고 검문을 하고있었다.

  
  붉은 완장이나 철모에 붉은 띠를 둘렀을 뿐 모두 국군과 똑 같았다. 나는 반란군과 국군이 편을 나누어 전쟁놀이를 하는 것 같이 무섭지도 않고 참 재미있어 보였다. 형님은 입술이 질린 듯 파랗게 되어 아무 말도 없이 무서운 어머님의 얼굴만 자주 처다 볼 뿐이다.

 
   광양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 지나가는데 좀 무식하게 보이는 젊은 사람이 한쪽바지를 짝짝이로 거저 올린 차림으로 검은 고무신을 신은 채 저만치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고개를 갸웃하더니 뛰어와 ‘보 소 보소’ 하며 공씨와 어머니를 붙잡아 세운다.


“틀림없어!”

 혼자 중얼거리는 소리를 모른척하고 지나가려니까 그 사람은 공씨를 보고 모두 따라 오라고 한다. 천연스럽게 갈아 앉은 목소리로 어머님이 보내주고 위엄을 보인다.

“쓸데없이 바쁜 사람들을 붙들어 귀찮게 하느냐.”

 그 사람이 고개를 갸웃 그러며 어디서 본 듯 한 얼굴로 어머니를 노려보며 말한다.

“대지주의 며느리가 맞지요!”

“대지주고 소 지주고 그게 무슨 말인데 우리를 붙잡아!”

 하시고 진짜 화가나신 듯 나무라신다. 그때야 공씨가 어머님을 말리시며 참으라고 눈짓을 하면서 조용히 그 사람 달랜다.


“자네가 잘 못 알고 그러네.”

“아무리 닮은 사람이기로 병든 아이들을 치료하는 길인데 어서 보내주게…”

 송씨는 어찌하던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애를 쓰며 진땀을 흘리신다. 남의 일처럼 고개를 돌려 모른 척 하던 사람들이 슬슬 모여든다. 그 중에 붉은 완장을 한사람도 있고 머리띠를 한 사람도 있다. 주위에 사람이 모여드니 용기가 솟은 듯 그 청년이 더 큰 소리로 말한다.

“큰애를 여기 남겨두고 이 사람들을 데리고가서 조사를 해 보시오!”

 어머님이 호랑이 같은 눈에 쌍심지를 켜고 당장이라도 목을 졸라 죽일 듯이 덤비며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할 정도로 고함을 지르며 호통을 치신다.


“이 놈아! 병든 아이를 무슨 권리로 인질을 잡아! 이 죽일 놈아-!”

“어 어 이 여자가 디 질려고 환장을 했나!”

“그래 개만도 못한 놈아 나를 죽여 봐라!”

 비교적 큰 체구의 어머님께서 흰 무명치마저고리를 바람에 날리면서 마귀 할멈처럼 두 손을 갈고리같이 높이 쳐들고 덮치려 하자, 그 사람은 동무들! 이 여자를 죽이시오! 하며 뒤로 멀리 물러섰다. 아무도 말리지 않고 보고만 있는 주위를 휘둘러보더니, 더 화가 났던지 이번에는 대창을 앞으로 내밀고 야- 하면서 어머니를 향해 돌진하였다.


“오냐, 이 놈 이!”

 어머니가 큰 고함을 지르시더니 쿠당 탕 하고 검문소 책상머리에 넘어진 사람은 대창을 들고 덤볐던 놈이고, 오히려 어머니가 그 대창을 빼앗아 들고 그 머슴 같은 사람을 찔러 죽이려고 충혈 된 눈으로 살기가 등등하여 달려들고 있었다. 이를 본 공씨가 달려들어 어머니의 허리를 무작정 붙들고 아이들을 생각하여 제발 참으라고 말리시며 대창을 뺏으셨다.

  잠깐 머문 순간 호루라기를 불며 철모에 붉은 띠를 둘러 계급을 알 수 없는 한 군인이 권총을 차고 짚 차에서 내리며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무슨 일이오!”

“대장동무! 이 여자는 대지주의 며느리가 확실합니다.”

 어머님 대창 앞에서 손을 싹싹 빌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놈이 이제야 살았다는 듯이 일어나며 어머니를 손가락질하며 인민재판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공씨가 낙담을 하고 있다가, 그 군인을 가만 보더니 회색이 돌아오는 눈치였다.  

군인은 잘 알았다는 듯이 말하면서 그 사람을 칭찬한다.


“동무, 수고하였소.”

“어디 사는 사람들이오?!”

 어머니가 군인을 보고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하동에서 왔소”

“어디로 가시오?”

“아이들 피부병 때문에 곡성 가는 길이오.”

“곡성으로 갈 수 없소! 위험하오!”

군인의 말이 부드러워지자, 그 머슴 같은 사람이 한번 더 대장에게 고한다.

“대장동무! 저 여자는 대지줍니다!”

“알겠소! 하동으로 진격중이니… 조사한 후 인민재판에 부치겠소!”

“예…”

“당신들은 이차를 타시오, 시간 없소!”      

짚 차 뒤에 올랐다. 녹 쓸고 앉을깨도 없는 철판의자다. 짚 차가 진상을 빠져나오자, 운전병에게 ‘기름도 부족한데 저 굴에서 처리하고 올 테니 신작로 입구에 대기하라’ 명령한다.


“당신들은 여기 내리시오! 굴속으로 가시오!”

“…”  

그런데 나는 조금도 무섭지가 않았다. 짚 차를 앞에 보내고 철로가 없는 굴속으로 들어서자마자 다짐하듯 당부한다.

“이 굴을 따라 빨리 가시오, 이런 이야기를 남에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란군 장교가 굴 밖으로 나가자 권총소리가 두어 번 울렸다. 한참 후 신작로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리며 무등산 고개 길을 넘어가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걸음을 재촉하며 조용하게 설명하듯 말씀하신다.


“왜놈들이 대동아 전쟁을 이겼으면 기차가 이 굴로 다녔을 끼다.”

“어머니, 죽으면 어쩔 라고 그렇게 싸웁니까!”

“이래저래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래도 요…”

“죽기를 결심하면 살기가 쉽고, 살라고 기를 쓰면 죽는 길 뿐 이란다”

아버지가 우리들에게 늘 상 말씀하신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卽生, 必生卽死)인 것 같다.

 

  철교도 없이 다리 발만 높고 낮은 것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곳을 따라 뱃길이 열린 돔박곡 나루를 건너 철둑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똥 장군을 지고 집으로 돌아오시는 아버지를 만났다.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아버지께 미안하다고 하신다. 아버지는 아이들 보는데서 여댁이 없이 운다고 나무라시며, 내 할 일을 임자가 하도록 고생을 시켜 미안하다고 위로를 하셨다.

 훗날 공씨가 우리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 안심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되돌아 가버린 이유를 말씀하여 주었다.


 그 반란군 장교는 할아버지가 무상으로 토지를 넘겨준 한 소작인의 아들이었다고 일러 주었다. 그 날 우리와 헤어져 구례로 쪽으로 갔는데, 그 후 소식이 없다고 전해주었다. <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