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족

                                                                                                                     원점자

 

  자정이 넘어 학원에서 돌아오는 딸을 가다리며 “당신이 있어 좋은 세상입니다”라는 TV프로를 보면서 그때 비평을 맡으신 교수님의 말이 생각난다. 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은 가족이란 ‘생명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움의 단위’라고 표현하는 하는 것 같았다. 

  궁핍한 하급경찰관 부부가 힘겨운 노력을 다하여 어린 두 자식을 기르면서 장년인 장애자 3남매를 가족으로 보살피며, 함께 살아가면서 독립할 때까지 진실하고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아름다운 모습을 침을 삼키며 숨죽여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한 시인은 가족은 ‘작지만 위대한 사랑’의 표현했으며 쉽게 생각하기 쉬운 가족을 위한 헌신적 봉사의 사소한 추억이야말로 눈물겨운 우리들의 사랑이라고 하였고 ‘생의 벽돌을 눈물의 불로 함께 굽는 일’이라고도 했다.

  가족이란 그저 법률적 표현의 의미가 아님을 새삼 느끼게 하고 또 고개 흔들어 되새겨보게 하는 표현하기 힘든 고귀함의 전율을 느낀다.

  지체장애를 가진 아내를 폭행하여 불구를 만들고 이웃의 신고로 철창에 갇힌 남편의 이야기. 정신장애를 가진 아들의 폭력을 방어하지 못해 자식을 죽여야 했던 아버지의 슬픈 변명의 이름이 정녕 ‘아름다운 단위의 표현’ 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가족을  국가란 테두안에서 두 가지로 표현하고 싶다.

  가족은 국가와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단위라는 의미에서 정체가 몰락한 공산사회주의 이념국가의 가족은 ‘국가를 위한 희생적 의무만을 이행하는 슬픈 단위’라고 표현한다면,  자본주의국가의 가족이란 ‘생존을 위해 국가란 강자와 살기위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해야하는 투쟁단위’라고 이름 지어주고 싶다.

  또 가족은 본능적 종의 유지를 위하여 신의 섭리로 만들어진 불멸의 단위라는 표현을 하고있기에 신은 자연이며 자연은 진실하고 부족함 없는 사랑을 대가없이 주는 것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오늘도 사회와 국가가 법률로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스스로 낙엽처럼 떨어져 사회와 국가를 위해 부엽토가 되어가면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아름다운 ‘패러디푸시킨’으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지켜가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