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예술인대회

2012년 4월 14일 토요일 맑음 (진양호 민속 경기장)

                                          

    제31회 진주예술인대회가 진양호 민속경기장에서 열렸다. 보내준 서신에 응답하는 마음으로 예정시간에 대어 갔다. 모두들 순건과 물병을 받아들고 진양호 양마산의 팔각정을 향한다. 매년 한 번씩 이곳을 오를때 마다 상쾌하다. 오늘은 고향 모교의 교장으로 퇴임한 김선생과 벗이되었다. 그도 7순에 들었으니 예술인 단합대회도 그만큼 늙었다. 기세 등등하던 선배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예도란 이름을 가진 진주에서 예술인들이 진주시민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베풀줄 모르는 기득권 옹호 때문이다. 청량한 날씨에 비해 썰렁한 대회 분위기다. 식상할 정도로 행정관리의 일과적 행사같다. 선진국의 예술인 대회라면 시민들이 참관하고 감동을 느끼며 예술인 대회를 기다려 스타들과의 즐거운 하루를 만끽한다. 우정의 교류와 나눔과 베품의 장르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너무나 썰렁한 이 대회에 진주시장이 참석하여 흩어져 있는 예술인들을 일일이 찾아 손을 잡고 인사를 하며 용기를 주는 모습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나는 '시장님이 일일이 인사를 하시니 국회의원선거를 하는 것 같다'고 웃었다. 시장은 부임후 지금까지 수차의 예술인 모임에서 <선택된 능력과 조건을 갖춘자>만 예술인이 된다는 부러움을 가식토로했다. 이 가식은 진주예술인들은 예술인의 기능과 그 재능의 활용에 대한 진의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질타와 같은 형언이다.

   태초에 예술이란 신과의 소통을 원하는 인간의 의지와 의욕의 행위다. 인간은 누구나 신과 소통할 수 있는 천부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의지와 의욕이 없는한 신과 소통할 수 없다는 예술의 본의를 시장이 모를리가 있겠는가! 그래서 예술이란 배려하고 희생하며 베풀때에만 신의 감응을 받아 인간이 만족이란 행복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악성이 그랬고, 시인도 그랬고, 조각가도, 미술가도 먼저 베풀어 놓고 갔다. 베푼자들의 이름만 후세에 남아 예술은 길다고 했다.

   인간이 존재하는한 신과의 소통을 위한 예술은 영원하게 이어가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는다. 예술인이란 신과 소통하는 정직한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가 진정한 예술인 같이 만족한 삶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이란 특정인의 자격이나 한정된 능력이 아니다. 신의 의지를 지켜 소통하려는 의욕을 가진 인간을 예술인이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예술인들이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은, 신과 함께하는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모든 사람이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삶을 베푸는 행위인 것이다. 어떠한 경우라도 예술인의 행위가 돈으로, 기술적 능력으로 환산되는 순간부터 이미 예술의 진의를 상실한 기득권이 된다.
  진주예술인들의 단합대회가 퇴락하고 있는 연유가 예술인의 올바른 관념대로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