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 17일 월요일 구름

9시가 되기를 기다려 경로식당 식권을 구매하려고 복지관으로 왔다. 문화원 교생들이 그린 수체화가 복도에 전시되어있다. 아이들 그림처럼 밝았다. 인생의 연륜을 가진 여인들은 젊은 시절의 각인을 잘 그려내는 것 같다. 동문수학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하고 교실 문을 열었다. 책임자 같은 아주머니가 나와서 자리가 없다며 타인의 출입이 달갑지 않다고 생각한다.

늙기도 서러운 나에게 극심한 배타성을 보인다. 나의 수필에 문인화를 삽화로 넣고 싶어 노력해봐도 쉽지가 않아  수법이라도 구경하고 싶었다. 젊어 보이는 여인이 나타나 하잘 것 없는 노인의 말에 대답할 가치도 없다는 듯 행동을 한다. 노인은 아이처럼 감성이 예민하다. 건방지고 무식한 여인처럼 보였다. 무식하다고 꾸짖었다. 문인화는 수양된 선비가  자기 글의  의미를 돋보이게하는 자화이도 한다.

글은 말이며 소통의 방법이다. 말은 정직한 마음을 가질때 소통 된다. 배려없는 소통이 없다. 차별과 구별은 배려를 알지 못한다. 선비는 이런 현상을 무식하다고 보는 것이다.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차별하거나 구별하지 않고 배척하지도 않는다. 두레란 신의 뜻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