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친구들의 기억

  경로식당에 또 낮이 익은 얼굴이 눈에 띈다. 아마도 나의 신병동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라호 태풍이 끝나자마자 가입대한 나는 콘세트라 불리는 야전 이동막사에서 훈련을 마쳤다. 해병대 신병 기수의 공식호칭은 92기 10차(해병98기)다. 전국의 각 지역에서 모인 잡탕소대가 8중대 5소대였다. 나는 가입대부터 사고를 내어 빳다를 52대나 맞고 소대장 침대 밑에 숨어서 밥을 얻어먹으며 감찰을 피했고, 입소식때는 나와 같이 오른 손을 들어라는 '한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란 선서도 하지 못했다.

  이 핑계로 소대장은 나에게 서무사라는 직함을 주어 소대의 신병행정을 맡겼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소대원을 통솔하게 되었고, 그때의 동기들을 지금도 아스라히 기억할 수가 있다. 나의 소대는 충청도 경기도 인천 서울 부산 진주 광주 목포 울산 포항 강원도등지에서 소수의 지원자가 진해훈련소에 직접 지원한 신병들만 모인 소대였다. 머리를 삭발하기 전의 가입대 기간은 전우애를 알지 못하는 한 달이었다. 문제아들이 모인 곳이라 패권을 잡으려고 갈등을 부추기며 잘난척 하는 사람이 나서기 마련이다.

   내가 52대의 몽둥이를 맞은 것도 이것 때문이었다. 처음은 인천과 서울 충청도와 전라도 친구들이 뭉쳐서 설쳐대며 돈을 걷두어 소대장과 교관의 비위를 맞춰주었다. 나는 돈이 없어 처음부터 그들의 요구를 한번도 들어주지 못했다. 미운털이 밖힌 나를 임시행도와 서무사가 소대장의 묵인하에 테러(린치)를 하려다가 두 사람이 오히려 당하고 말았다. 그후부터 부산 대구 경남의 경상도 친구들이 패권을 잡았고, 정식 소대편성 이후 내가 서무사를 맡게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