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회

 

곰바우(웅암)

 

  되돌아 보는 마음이 행복감을 반추할수록 행동하는 의지를 갖게한다. 무릇 사람들이 만드는 일의 열매는 감회의 가늠으로 그 가치가 매김되지않을가. 행·불행은 차이가 없는 것이라 하였는데도, 이것을 구분지으려고 기를 쓰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어리석음이라고 깨닫게하는 멋진 여행이었다.

  시천주운전을 한답시고 10시 반쯤 일찍 흰곰(코란도5-95년식)을 몰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묵방산들국화>도착시간은 3시가 훨씬 넘어 버렸다. 2시간 반 남짓하면 도착한다던 곳이 이렇게 멀 수가 없다.
  탓할 수 없는 나의 과오가 있다! 2009년의 네비정보가 신도로를 인식 못해, 방황한 것이 짧은 점심시간이 포함되었지만 4시간을 넘긴 여행이 되었다. 만탕의 기름을 돌아갈 몫까지 허비해 버린 것이다.

  부끄러운 비유지만, 오랜 신앙세월을 자랑하면서도 실천을 모른는 일부 천도교인의 시효가 지난 아집적 자긍심 같은 지식을 믿고 신천지를 탐방한 부끄러운 꼴분견이나 진배없어 공개 하는 것이 가끔 행복감을 만들기도 한다.
   줄포의 한 정유소에 경유가1,550원이란 안내판이 기름을 재충전하는 푸짐하고 느긋한 마음을 만들어 주었다. 진주에 돌아가면 수련을 마친 깨끗한 마음을 지켜 늙은 흰곰의 네비게이터에 새로운 정보로 재무장시킬 것이다.

   그나저나 총회가 2시 반인데 걱정이다. 친구들의 모임에 5분만 늦어도「히틀러」흉내를 내어 무슨 신용을 얻느냐고 성토를 하며 지각하는 꼴을 못보는 성미다.
  그래선지 '늙은이가 주책이군!' 하는 미움을 받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도착한 차량이 적었다. 숨기듯 주차를 하고 회의장으로 살짝 들어 서려는데, 사무총장과 사무국장이 농장에 간다고 나온다. 아직 회의가 시작되지 않았다.

   예정시간보다 아마 두 시간이 지나서야 개회가 선언되고, 분임위를 시작할 무렵이 되어서야 38명이 모였으니 태반이 내가 도착한 후의 한시간 지참인 것이다. 귀한 2시간이 멍청하게 탕진 된 것이다. 지각은 자신의 생명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물론, 남의 시간도 함께 탕진시킨다. 공동이념의 보편적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한울연대>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눔의 시간에 나타난 <민속예기의 귀재> 청해 오재벽 선생의 청직한 재담이 우울했던 우려를 먼지털이로 거울위의 먼지를 해맑게 털어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이 먼지털이 장단에,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게 만드신 남태욱 공동대표님과 몇 분의 모습은 홍익인간의 건국이념, 동학사상의 경천애인이념, 한울연대의 공동사업이념이 지켜야 할 보편적 덕목인 배려의 진수를 시연해주었던 것이다. 희망이 넘치는 감동의 늪에 빠져 들게 하신 그 분들이, 천은의 믿음을 보여준 그분들이 공동대표였다는 것이, 진실한 우정을 구김없이 역어주는 모습들이 목사님이었다는 것이, 천도교인 아닌 일반회원이었다는 것이 형언할 수 없는 감명과 평온한 신뢰를 스스로 만들게 하였고, 한울연대를 바로 보게 해 주었다.

   그 뒤에 이어진 잔치다. 지금도 나는 동·서양의 악기를 결합하여 만들어 내는 음악이 동학사상의 보편성과 한울연대의 격이라 여긴다. 그래서 퓨전음악은 홍익인간이념, 동학이념, 한울연대의 공동이념의 형상이라는 공식을 자주 주장하고 있다. 청해 선생에게 국악 대·소금을 하모니카와 같이 단일계음의 악기로 개발할 수 없는가를 말하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 아쉽다. 그는 양악기와 국악기의 결합을 원치 않는 듯 보였다. 믿음의 세월이 익어가는날, 그토록 만나보고자 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게 해 주는 것은 한울님의 감응하심이다. 한울연대의 미래가 창창해질 기연중의 하나가 될지도 모른다.

   끝맺기가 아쉬워, 상임대표님의 간결하고 멋진 신념의 설교에 딴지를 부린다. 한울연대는 공동이념의 보편성을 추구하고 실천하는 동아리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이념이나, 철학사상의 진리에 대한 보편성을 추구하는 공동의무를 엄중히 지켜야 한다. 비교적 대위나, 장단의 특성을 부각하는 것보다, 공동이념의 본질적 보편성과 공변된 진리를 부각시켜 한울연대의 궁극목적에 충실하도록 노력함이 필요불가결한 핵심이라 권하고 싶다.

  다음 기회의 <한울연대모임>에서 천주교인, 기독교인, 불교인, 유교인, 이슬람교인 힌두교인 등 등의 모든 교리의 설교를 들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이것은 홍익인간의 공변된 진리만를 인정하고 추구하여 실천해가는 공동의무가 <한울연대>의 眞義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상으로 얻어온 <묵방산들국화>의 고창 청주 한 병이 혼자만의 식탁에서 동이날 때까지는 이런 생각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