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은 시작되었다

-삼천포수련을 마치고-

글/ 웅암 이진원      

 

 간간히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돌아서는 얼굴에는 폐강의 아쉬움이 붉은 눈언저리에 그려진다. ‘삼천포교구의 따뜻한 국(羹)때문에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농담에 서로 잡은 손과 맞닿은 체온의 따뜻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춘추시대부터 서부개척시대까지도 국(羹)은 향수(鄕愁)를 말한다. 어머님의 정성과 눈물겨운 사랑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 끓일 줄 아니?” 라는 말은 “요리 할 줄 아느냐? 밥 지을 줄 아느냐?”로 통한다.

  어느 집단이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는 동력은 먹는 음식으로부터 시작된다. 천도교수련에 대입해보면 안으로 강화를 얻는 것은 천지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음식(젖)을 먹는 것이며, 밖의 접령은 수련으로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단련 하는 것이라 비유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삼천포교구의 청장년수련의 성공비결 중 첫째가 끼니마다 천지부모의 정성과 사랑이 넘치게 베풀어 준 삼천포여성회원들의 아름다운 노고와 교구교역자들의 효제온공(孝悌溫恭)의 헌신이었을 것이다.

  그 두 번째가 이 고마움을 느끼며 한 가지라도 더 얻고 싶은 수련생들의 아름다운 연성모습이었다. 천도교수련에서 수련생 서로의 정을 나누고, 나눔의 대화로 눈물을 흘리게 하거나 배꼽을 잡는 박장대소를 할 수 있게 했던 일이 있었단 말인가! 그것도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면, 천도교 수련문화의 변화는 이렇게 시작되어가는 것이다. 긴 시간의 고통을 참는 것도 중요 하지만, 슬픔과 행복을 나누는 것 또한 중요한 연성이 될 수가 있음을 입증하였다.

  수련지도 진행자를 신뢰하는 것은 아름다운 믿음이며, 완전한 동귀일체의 결실을 맺는 바탕이 된다. 그렇게 믿어준다고 해서 거만하거나 나태하지 않고 시공간에 알맞게 능률적으로 시간을 배분하여 수련생들의 자율적 의지를 물어가면서 작은 시행착오를 조용히 고쳐가는 지도운영동덕들의 진지한 덕행이 그 세 번째의 백미가 된다.

  이 밖에도 아름다운 채색으로 금상첨화를 그려준 적재적소의 특강이었다. 송 봉구 교수의 ‘동학의 수양론 강의’는 상등인의 진사 품이었다. 그 숭어 같은 보조에 덩달아 꼴뚜기처럼 뛰어 본 나의 작은 지혜가 환희와 건강을 더해주었다니 이런 횡재를 어디서 얻겠는가! 천도교 지상천국이 아니면 누릴 수 없는 서로의 행복이리라.

  우직(愚直)이란 명사를 형용사로도 쓴다. 심지어 우직(牛直)이란 글자로 바꾸어 형상화 하여 어리석고 정직(貞直)함을 뜻하는 신사님의 심학(心學; 愚 黙 訥)이기도 하다. 세인(世人)들은 약속(約束)을 잘 지키는 사람을 우직(愚直)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 천도교경전(天道敎經典)의 계훈(戒訓)은 대부분 이 약속에 귀결(歸結)된다. 포덕문에서부터 현기문답을 거쳐 천덕송가의 ‘샘’이란 노래까지. 약속이 지켜지는 곳이 바로 지상천국이란 것을 내포함의(內包含意)하고 있다. 그래서 천도교인은 약속 지키기를 목숨같이 여기는가 보다.

  경상도연원 청장년회의 자체수련(7월23일~7월28일)을 삼천포교구에서 실시하는데 천덕송 지도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입버릇처럼 그렇게 쉬운 음악을 천대하여 그렇게 쉬운 도를 통하지 못하고 천도교가 앉은뱅이가 되었다고 익살을 부렸던 말 값을 진짜 갚아야 된다는 중압감(重壓感)이 엄습했다. 늙은이의 주책이 이렇게 무서운 빚이 될 줄 느끼지 못했다. 큰 행사에 차질 없도록 무사히 악기를 옮겨야 한다. 날씨가 좋고 새 악기라면 이러지 않으련만, 날씨도 어렵고 악기도 내 나이를 먹은 탓에 곳곳에 신경통이 걸려있어 안전하게 모셔 옮겨야 했다. 신사님의 말씀이 내 귓가에 맴돈다. “이 멍충아, 삼경(三敬)을 진작 알았어야지!” 하는 것 같다.

  다음날 약속 시간 30분전에 우직한 도암장이 이미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꼼꼼하게 챙겨 진주를 벗어나자 빗방울이 뿌린다. 촉촉이 젖은 빗길은 자동차를 조용히 가게 해 주었다.

  일 층에 자리를 잡고 먼지투성이의 악기를 닦아 치료하듯 꼼꼼히 조립한 후 전원을 통했더니 제대로 소리가 났다. 순간적으로 “한울님 감사합니다.” 하였다. 쥐 굴 같이 조용했던 삼천포교당의 천정이 울릴정도로 강렬한 리듬을 타고 ‘주문의 노래’가 울리자 여기저기서 흥얼거리는 하밍(harming)이 느껴졌다. 음률은 동귀일체의 벼리란 것을 알리는 편안함이 나의 불안심을 지워 주었다.

  수련에 함께하신 교령님과 연원회 수장께서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인자한 모습은 한울사랑을 느끼게 했다. 취침전의 명상시간, 어린이와 학생들을 위한 보이스카웃 시스템을 도입한 수련문화를 제안하기도 했었다.

  함께 땀을 섞어가면서 <동학의 수양론 연구>를 특강해주신 송봉구 교수의 소탈한 성경신의 모습은 우리 모두에게 거리낌이 없게 상등인(上等人)의 도력을 보여주고도 남았다. 서로가 충실하고 착한 수련모습으로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자연스럽게 감응케 한 이번수련은 감명 깊었다. 엉거주춤했던 처음의 어색한 포응이 진실로 체온을 느끼는 우정의 포응으로 바뀔 수 있는 수련이야 말로 참으로 바람직한 수련이다.

  프로그램에 도입된 나눔이란 우리 천도교인이 지녀야 할 절대 절명의 수련 프로그램으로 남을 것 같다. 남의 말을 진지하게 끝까지 들어줄 줄 아는 천도교인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천도교인은 남의 말은 진지하게 들어주고, 베품과 배려는 먼저 하는 인간으로 바뀌지 않으면 종자천도교인이 될 수가 없다.

  이번 수련프로그램중 남을 배려하는 간단한 체험학습이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화를 준 것은, 나눔의 시간에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거짓 없이 전해주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 사람 모두가 천사와 같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수련기간에 기초악전을 배워 천덕송 반주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천덕송을 어떻게 불러야 한다는 것쯤은 모두가 깨우친 것만으로도 큰 보람이다. 그토록 성 경 신으로 천덕송 학습에 임해 주신 동덕들이 거룩한 한울님 같았다. 어떤 곳에서도 진실한 마음은 서로 통한다는 우리 경전의 진리가 이것이다. 자율성을 가진 수련, 수련자가 바라는 맞춤수련, 정신과 육체의 상호보완적 수련, 신정보와 신지식의 학습프로그램이 도입된 수련전통의 복원이 패러다임전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결론이다.<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