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보고 싶은 동학기념식으로

웅암 이진원     

   초대를 받거나 혹은 받지 않았는데도 유독 가보고 싶고 가지 않으면 은혜를 잊는 것 같은 경조사의 가정이 있다. 우리의 기념행사가 이런 가정처럼 될 수는 없을까. 가끔씩 나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구국의 역사를 아는 이방인들도 우리의 초라한 기념행사(자국에 비교하여)를 보고 안타까워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차이다.

   이제 세계화시대에 맞는 동학기념식행사로 격상하고, 동덕들은 물론 세계인들이 문화와 역사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을 갖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신의를 주고받는 진실한 우정이 충만한 행사를 만들 능력은 없는 것일까. 작지만 알찬 행사로 진실한 믿음이 녹아든 성경신의 배려심령이 가득한 공간의 체온을 느낄 수 있게 만들어 낼 의지는 없는 것일까.

   동서고금의 철학도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을 아집이라 하지 않는다. 동학의 전통은 '먼저 베풀어야 한다'는 신의와 배려의 실천이다. 동학 천도교의 모든 행사는 경전의 의무를 실천하는<대인접물프로세스>를 적용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

   <대인접물프로세스>란 천도경전의 보편적 종지다. 우선 가까운 가족이 서로 신뢰하고 참사랑으로 배려하면 만사형통한다(家和萬事成)는 진리다. 요즈음 방송미디어에서도 부모와 학부모의 차이를 어필 시키고 있다. 즉, 화목한 가정은 화목한 이웃을 만들고 신뢰가 깃든 선진 국가를 건설하게 된다는 우리천도교의 종지가 아닌가.

   고희에 접어들어 철이 난 탓인지 모든 동학기념행사를 기억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보고 느낀 점을 기록해 두는 것도 남을 배려하는 일이라 여긴다. 그래서 수원의 고주리 제암, 정읍 전승동학기념, 의암성사의 봉황각, 전주화약기념식 등을 찾아보았다. 그 어느 곳도 동학의 아름다운 전통을 조금도 느껴보지 못했다. 옛날의 동학행사는 전부가 동학도인들 자신의 일이며 자신들의 사명이었다는 말씀을 들었다.

   생전의 선친께서 타지동덕의 행사초대를 받고 집을 떠났다가 농번기가 지나 돌아오셨다. 철 늦은 모내기를 하시면서 충청도지역의 늦벼종자(만생종)를 뒤늦게 심은 덕분에 한해를 피해 풍년농사를 지었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섬진강 포구(광양 진월)에서 생산한 해태(김, 싱갱이, 속대기, 미역 등)와 건어물 등을 농한기를 이용하여 전라도에는 순천, 구례, 남원, 임실, 전주, 청주까지, 경상도에는 진주, 산청, 함양, 거창, 합천, 경주, 대구까지를 왕래 하셨기에 많은 동덕과 유대가 있었다.

   어느 날 전주지역 동덕의 초청으로 그곳 행사에 참가했다가 친구가 과로로 쓸어져 그해 농번기를 놓칠 형편을 보고 이앙을 마쳐주고 돌아오셨다. 고향에서는 수확이 많다는 올벼(조생종)를 일찍 심은 후 다른 복합영농을 하였다. 그런데 그해 장마와 태풍의 냉해로 벼농사를 망쳤는데, 아버지만 친구가 준 종자 덕분에 풍년을 맞았다고 말씀 하셨다. 남에게 바람 없이 먼저 베풀면 한울이 그 보답을 해 준다는 말씀이었다.

   지금이 스승님들의 심령복고를 위한 ‘동학의 르네상스’가 필요한 시점이라 주장한다. 믿음의 실종, 불신과 시기심의 팽배. 아집과 소통부재의 현상은 풀잎 천도교도를 질식시키고 있다. 옛 동학도들의 신뢰와 정성어린 우정들을 되새겨 아름다운 기억으로 숨통을 열수 있는 기념식장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동학혁명군이 양호초토사(兩湖招討使) 홍계훈(洪啓薰)의 선무공작에 속아 강화조약인 전주화약을 체결하지 않고 동귀 일체하여 한양을 점령했었다면 동학혁명은 성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반대급부의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어리석은 당시의 지도부처럼 지금도 깨닫지 못하는 천도교의 지도교직자들이 아닌가.

   예나 지금이나 천도교의 지도자와 국가공직자의 신뢰성은 풀잎 같은 천도교인이나 국민으로부터 존경받지 못하고 있다는 실상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다. 전주화약에 회유되지 않고, 해월신사의 신성한 믿음을 존경하고 분란하지만 않았더라도 혁명은 성공하여 선정을 베푸는 입헌왕국이 창건 되었을 지도 모른다.

   더불어 당쟁 아집의 위정자들에 의한 청일 전쟁도 한일늑약도 태평양전쟁도 일어나지 않고 이로 인한 국토의 분단도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동학혁명의 실패 원인 중의 하나가 전주화약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전주화약의 역사는 민주주의 탄생이나 지방자치행정의 효시라고 여기는 것을 부끄러워해야할 너무 큰 반대급부를 부각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추악하고 무지한 일부의 동학지도자(지금도 변함이 없다)들의 각자위심이 천추의 한을 남긴 동학내분의 대우를 반성해야한다는 동학기념행사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본의이며 주장이다.

   게시판에서 미사려구로 초청하는 안내광고를 보고 마음이 흔들린 많은 동덕들이 모두 부푼 마음으로 참석을 해보지만 서글픈 느낌을 털어내지 못하는 듯하다. 초라하고 작은 <봉황각>에서 500명의 애국지사를 길러내신 성사님의 위대한 업적은 삼천반열의 제자들을 길러낸 공자의 업적과 비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의 웅장하고 거대한 수도원모습 속에서 초라한 기념식장을 보는 시민들의 안타까운 탄식소리는 부끄러움을 숨길 수 없고, 제왕의 아성 같은 정읍의 기념관을 두고도 초라한 탁발행색의 소외된 저들만의 기념행사, 이름만 빌려 노천에서 억울함을 대신해주는 기념식으로 동정을 얻고 있는 서글픈 기념행사, 웅장한 기념관 교당에서 설교만치나 긴 집례자의 불필요하고 지루한 설명을 들으면서 시일예배도, 기념행사도 아닌 신성한 찬가의 성음도 지운채 초라한 강연같은 전주기념행사 등은 모두가 이방인들의 고개를 흔들게 하는 안타까움이다.

  무엇이 잘 못된 신앙적 행사이며, 무엇이 죄가 되는 지도 모르는 집행부의 고질화 된 천도교의 모든 기념행사가 하루를 살다가 죽는 나방이 되더라도 이제는 애벌레의 탈을 벗기위해 허울을 뚫고 나와 역사의 사실과 진실을 엄연하게 보여주는 넓은 날개를 펴야 한다.  한 두 사람의 작은 날개가 큰 역사를 보일 수 없다는 진실을 깨달아야 <대인접물프로세스>를 운용할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자신이 초라하고 작은 존재임을 깨닫는 날, 진실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한울님의 감응을 얻게 된다. 그리하면 K2를 트래킹 해본 사람첨럼 세상이 밝고 넓은 천지임을 알게 되지 않을까!

   처음 전주를 방문하는 완행버스 속에서 상상한 것은 집강소에서 서민을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 동학도의 모습들이 민초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의 퍼포먼스를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던 것이다.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한 생각을 했다는 쓰디쓴 입맛을 전주비빕밥에 섞어 비벼 먹어 버리고 돌아와 버렸다. 내년에는 행여 볼 수 있을 런지! <웅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