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공감
<제암 고주리 합동위령식 참가기>

 

웅암  이 진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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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일 진주예술인 단합대회를 마치자마자 곧 집으로 돌아와 내일 새벽여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깊은 잠결에 제암 위령제 참가를 내년으로 미루자는 교화부장의 전화를 받았다. 따라갈 심산이라 '할 수 없지요' 라고 대답을 하며 일어나 앉아 얼버무리듯 주문을 암송해 본다.  '번복지심으로 자신을 속여 무슨 일을 하겠느냐!' 하는 생각이 머리를 쭈삣 세우며 정신이 든다. 전등을 켜고 시계를 보았다. 열한시였다. 지금이라도 가거라! 일년이 즐거울 것이다. 아버지와 어미니 사진이 빙그레 웃는 것 같다.

   게시판을 보고 세 사람의 연락처를 적었다. 카메라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섰다. 수원가는 심야버스는 당초부터 없단다. 부득이 서울행을 탔다. 오늘 따라 기다리는 이 없는 나그네 쫓아내듯 세 시간반이 걸린다던 차가 30분을 앞당겨 도착하여 남부터미널 반대편 가로등도 없는 음침한 길가에 차를 세우며 손님을 모두 내리게 한다. 오늘 같은 날은 지하철 개통시간까지만이라도 차안에 머물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길을 건너 남부터미널 휴게소로 들어가 쉴 곳을 찾아 보았다. 불꺼진 휴게소의 침침하고 침울한 밤공기에 손끝이 시렸다. 가끔씩 도착하는 심야버스 손님들도 띄엄띄엄 자리에 앉았다가 내처럼 갈곳이 만만치 않은 듯 힘없이 나가는 사람들 처럼 보였다. 심야영업을 하는 시간 까지만이라도 휴게소에 불을 켜주었으면 따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에너지 절약을 모른다고 떠벌리던 내가….

   행복이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는 여행이라더니, 학창의 수학여행이 기쁜 것은 한울님 같은 부모이 기다려주는 깊은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가련하게 늙어 버린 지금의 나는 한울님 같은 부모님의 기다려줌이 없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서로의 기다림에 감사하는 여행이라 했다. 그래서 내 마음의 약속은 같은 생각을 가진 모든이의 행복을 만들어 주는 것이란 의미를 깨닫게 한다.

 

  여행은 한울님이 시키는 것이라고도 한다. 한울님의 영적은 마음의 약속을 지키는 사람에게만 일어난다. 그래서 옛부터 성인들은 험난한 시련을 여행에서 깨달았는가. 길건너 톳테리아에 24가 밝고 따듯해 보였다. 때묻은 장갑을 벗어들고 푸-드 샵으로 들어 섰다. 따뜻한 온풍구 곁에 앉으려는데 청소를 한다며 턱머리 지시로 옮겨앉으란다.  
   네델란드의 심야 카페거리에 온 것처럼 착각을 하게 한다. 금발백인 알바가 동양인 여행자를 보고 가볍게 지시하는 말버릇과 너무나 닮았다. 여행 베낭을 짊어진 젊은 남녀와 어린 학생들도 새벽 네 시인데 자리 값으로 햄버그를 시켜 먹는 것 같다. 한 쪽 창가에 미성년 여학생 둘이 작은 베낭 하나씩을 턱밑에 괴고 잠을 자고 있다. 부모님이 이들을 얼마나 기다릴까하는 부질없는 근심을 해본다.

   커피를 시켰드니 커피메이커 청소 중이란다. 아침을 먹기 너무 이른 시간이다. 미국에있을때는 질리지 않게 잘 먹었던 버그킹이 이제는 별로 내키지 않는다. 아무리 빈 자리에 앉아 있지만 음식도 시키지 않고 쉬기가 민망했다. 다시 일어나 버스대합실로 돌아왔다. 총알택시기사 두 분이 목적지를 묻기에 수원까지 얼마냐고 물어보았다. 수원도 나름이라 해서 권선구 매탄동이라 했더니 4만원에 모시겠다고 한다. 머뭇거리는 나를 보고 연세드신분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히 쉬는 것이 돈 아끼는 방법이란다. 내 집이 수원인줄 아나보다.

 

    "이 근처에 해장국밥 파는 곳이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나이 좀 들어보이는 기사분이 손가락으로 보험회사간판을 가르키며 저 건물옆 골목길이 철야 음식점 골목이란다. 골목길 입구 편의점에서 여행용 세면구를 사들고 '토속순대국집'에 들어 갔다. TV를 보던 부부가 멋적은 듯 멀뚱히 바라본다. 별 반가운 기색이 아니다. 
   "영업합니까?"
   "예, 건데요?"
   "순대국밥 한그릇 주시오."
   늙은 노인이 들어 섰으니 노숙자가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다. 요금 선불제가 아닌 음식점은 다 그랬다. 처음 들렀던 곳에서도 된장찌개백반은 노인들이 드실 쉬원한 국물이 아니니 옆길로 돌아가면 순대국집이 있으니 그리로 가라했었다. 

 

   한참 걸려 어슬프게 깔려진 서너쪽의 시든 양파, 접시 바닥이 보이게 뿌려진 새우젓, 먹다 남은 묵은 배추김치 몇 쪽이 담겨진 접시,  밥 한 공기, 그리고 김도 나지 않는 하얀 색깔의 순대국이 오븐에 담긴채 였다. 식고 시간이 짧았는지 순대국이 뜨겁고 짜기만 했다. 장사가 잘 되지 않아 보였다. 어차피 시간 보내기라, 천천히 약 먹 듯이 노력하여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더 이상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 밥 값을 치루고 화장실을 물었드니 밖을 나가 이층으로 올라 가란다. 해병대 사령부에서 근무(60~62년)할 당시 역전의 최하급 목로주점의 화장실 그대로 였다. 토속음식 선전 간판을 걸고 이런 화장실로 세계인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면 구제역이 언제까지 떠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되었다. 어찌하여 우리 천도교를 연상케 하는 것일까!

   속이 메스꺼워 밖으로 나왔다. 나를 이런 음식점으로 인도한 한울님의 징벌이 무서웠다. 버스 대합실로 다시 돌아와 넓고 밝은 화장실에서 양치와 세수를 깨끗이 하였다. 처음 이곳이 불결하다고 여겨 더 깨끗한 곳을 찾아간 곳이 그 음식점이었기 때문이다. 대합실은 전등이 환히 켜지고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한다. 경비원에게 지하철 운행시간을 물었다. 지금 시작되었다고 한다. 5시50분이다. 지하철을 타고 수원까지 가서 안내동덕을 만나지 못하면 형님댁에 들러 안부나 묻고 돌아올 심산이었다. 

 

  지하철 5번 입구로 들어가려다 커피 생각이 나서 다시 롯테리아에 들렀다. 두 여학생은 자리를 옮겨 햇빛이 비치는 창가에 고양이 새끼처럼 탁자위의 작은 베낭을 안아베고 머리를 맞댄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 바텐더의 커피메이커가 작동하고 있었다. 커피를 시켰드니 퉁명스럽게 '돈부터 내세요!' 한다. 2000원짜리라 선지 큰 종이 컵의 커피가 너무 많았다.
  여기선 플라스틱 오븐을 제외하곤 모두가 인스탄트 종이 재료용구만 사용했다. 탄산가스 유발없체의 대표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곳이다. 거품이 가득한 커피향이 좋아 한모금 맛을 보았다. 좀 싱거웠다. 가는 막대기 설탕 두 개를 다 넣고 한참을 젓고난 후에야 입맛에 맞았다.

   6시가 조금 넘었다. 아직도 이른 아침이라 미안한 마음으로 집행부와 아는 동덕에게 차례로 전화를 두 세 번씩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지하철을 타고 수원으로 가야 될 것 같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집행부의 전화를 차례로 걸어 보았다. 다행히 맨 나중에 장동덕 간사가 전화를 받는다. 7시20분경에 수원으로 먼저 가야할 일이 있다며 여기서 편히 기다리라고 한다. 전화를 끊자마자 뜻밖에 진주에서 수성당이 초행길 안내를 받도록 총부사람에게 연락을 해드릴까고 묻는다. 한울님의 감응없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영적이 아닌가.  한울님은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하셨다. 그리고 모든 불안과 걱정을 한꺼번에 사라지게 해주셨다.

 

   약속 시간도 되기 전에 한 귀부인이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들어온다.  저 부인이 동덕인가보다 생각하는 순간, 조용한 목소리로 '진주에서 오신 동덕님이시지요?' 한다.  너무 고마워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택시로 한시간이 넘게 걸려 제암에 도착하니 8시 21분경이었다. 대학생단은 벌써부터 준비에 분주하였다. 나를 따뜻한 방으로 안내하며 편히 쉬라고 한다.

   위령제 시작전에 유적지의 자료를 얻고 싶어 일일이 사진을 찍어 두었다. 사진에 담은 이야기가 많았다.  9시가 좀 지나자 동덕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어제 도착한 삼천포 교구장과 부산의 부암도 만났다. 교분있는 두 동덕을 만나 더 반가웠다. 고주리 순국선열 참살현장에서 신임 교령님과 총부직원들도 만났다.

 

2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참석 할 줄이야. 문밖에서 까지 고개를 디밀고 위령식을 참관한다. 마을 사람들도 모두 고마운 마음으로 참여하는 것 같다. 점심 준비를 하고있는 제암 부녀회원들의 정성이 누구만 못지 않았다. 제암 고주리의 위령제는 종교도 신분도 사회계층의 고하도 구별없이 한울님의 뜻을 거룩하고 감사하게 인식하는 <아름다운 공감> 그 자체였다.  삼화일목을 깨닫고 싶거든 제암 고주리 위령제를 보아라!

   위령문 낭독이 가슴을 저리게 하더니, 부드러운 합창단의 위령송이 울려 나왔다. 조용한 리드 송을 따라 나도 위령송을 부르다가 후렴의 '가련한 세상사람'을 부를 때 갑자기 귀가 멍-해지고 목이 메어 노래를 부를 수가 없었다. 기를 쓰며 노력해도 소용없다. 두 눈이 뜨거워 지며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작은 손수건을 적신다. 가련함이란 늙어 무능 해 가는 처량한 우리의 노년이 아닌가. 의욕을 잃고 세상 사람의 조롱만상이 되어있는 천도교의 형국이 이 같은가!

 

   추풍령 고개를 넘어오는 차창 밖의 풍경이 아름답다. 이 강산이 바로 지상천국이라고 느끼는 순간 명암의 키타반주소리가 명랑하게 들려온다. 그 키타반주 소리 아래로 조용하게 사물놀이의 중중머리 리듬이 섬세하고 세련되게 꽉 짜여진채로 질퍽하게 안개처럼 깔려 나온다.
  명암과 청순한 어린 여동덕의 이중창이 그 리듬을 타고 태평소 처럼 해맑게 퍼져나온다. 나는 지긋이 눈을 감고 그 우아하고 웅장한 리듬에 맞추어 스트링앙쌍블하모니 소리로 아코디온 반주를 슬며시 곁드려 보며 혼자 웃었다.
   명암 이갑식 동덕이 우리 일행을 수원역까지 그의 차로 전송해 주면서 우리와 함께 흥분된 기약을 해 보기도 했다. 언제가 우리의 천덕송을 청년회의 멋진 사물놀이의 리듬에 맞추어 키타, 키보드, 아코디온, 브라스를 합쳐 삼화일목(퓨젼음악)의 천덕송으로 전국투어를 할 수 있는 날을 제암 고주리에서 시작해 보자고 하였다.

 

  언젠가 용담정 철야 수련 때 동천수 동덕님의 말이 생각난다. 힙팝을 도입한 천덕송으로 젊은이들을 포덕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여 참으로 멋진 발상이라고 감탄한 기억이 난다. 머지 않아 그와 같은 뜻이 이루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용담유사는 44조 가사다. 힙 팝송으로는 그 이상 따를 노래말이 없을 것이다. 후천 종교의 음악적 예술성까지 감응하신 대 신사님의 선견지명은 우러러 경외받지 않을 수 없는 위대함이 깃들어 있다.

 

  '내년에는 아코디온을 가지고 오십시오' 하신 동덕님의 바람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한울님에게 받들어 청하오니 감응하옵소서!<웅암 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