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 한다

이 진 원


   가슴에 숨겨두었던 동학을 찾아 입도한지 일 년이 채 못 된(포덕147년 1월 8일 입도) 나에게는 종무원장의 포괄적이며 편협한 아집적 호소가 나를 엄청나게 공허하게 만들었다.


   천도교는 이제 죽었으니, 다시 스승님들 보다 더 위대한 신도가 탄생하여 이적을 보일 때만이 중흥이 된다는 말로 들린다. 즉, 지금의 우리가 스승님과 같이 되어야만 중흥이 된다는 말이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고 성미가 불어나면 이미 지상천국이다. 이때에 누군들 포덕을 못할까!


  내 스스로가 경전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선악을 구별치 않는 믿음을 빌어 각자위심으로 파벌을 조성하여 내분하고 갈등하며 스스로 소외되는 형국이 원인임을 숨기려는 글로 여겨진다. 이를 위해 연성수도가 필요한 것임을 종무원장이 인식하지 못하고 궁극적 목포로 돌리는 것 같아 아쉽다.


  즉 종무원장의 주장이 근본적 타당성은 인정되나 과정의 혼돈은 피할 수가 없는 이유 두 가지를 우선 말한다.


  1. 일부의 교직자나 주도적 동덕이 종교적 이념의 기덕권에서 정직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즉 나의 교직이 나의 직분이 나의 자존적 신앙이 한사람의 불행한 창생을 위해서라도 헌신하겠다는 진실한 의무감이 결여되어있다는 것을 명증하고 있다.


  2. 인내천의 종지가 지극한 수련만 하면 스스로 스승님과 같은 신격화가 될 수 있다는 무극대도의 궁극적 의미를 보편화 하여 스스로를 소외함으로써 경천순천을 망각하는 이율배반을 조장하고 있다. 수련이란 내 자신은 물론 나의 가족, 나의 형제, 나의 이웃동덕들을 위해 어떻게 배려하고 봉사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한울님의 마음가짐을 얻는데 선결 목적이 있다는 의무를 망각하고 있다.


   교회의 중흥은 우선 나의 언행에 대한 신뢰를 먼저 쌓는 것이 현대의 이적행위라는 스승님의 미리 가르침을 제대로 느껴 알아야 한다. 궁극적 무극대도를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의 수단으로 하는 것은 한울님을 속이는 일이다. 우리는 실천과 믿음을 제대로 지켜 사회로부터 신뢰를 얻을 때에만 한울님의 인간상을 펼칠 수가 있다.